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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되었다.
노출되었고 옮기려면 나 혼자는 안되지만 여럿이 달라붙으면 한꺼번에 치울 수 있는
그것은
내가 뭔가를 하고 있을 때 있었다. 가만히 두면 감자에 싹이 나는 물건이 아니라서 뭘 하는지 몰랐지만 한 번도 없었던 적이 없던
그것은
더는 사용할 수 없는 크기로 있었다. 이제 나는 그것이 옆에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옆에 두는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임승유(1973~)
꽤 큼직한 것이 한곳에 자리를 잡고 있어온 지 오래되었다. 그것은 늘 내 생활의 공간에 있었다. 그것은 너무 가만히 있어서, 자라거나 변하는 것이 아니어서 각별히 눈길이 가는 일이 드물었지만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다. 이제 그것을 무언가에 맞게 쓸 수는 없게 되었지만, 그것이 내 가까이에 있다는 것 때문에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정작 그것을 내 옆에 두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고 의식하기 시작하자 그 방법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이러하듯이 우리에겐 있는 듯 없는 듯이 함께 살아온, 내 몸과 마음의 그림자처럼 되어버린 물건들이 있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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