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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를 끝내자마자 그가 화장실에 간 사이 나는 창 바깥을 쳐다보았다
백색의 햇살 너머 북한산을 보았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뭘 보고 있는지 묻는 그에게 나는 날씨가 좋다고 말했다
버스에 그를 태워 보내고 나는 걸어서 집에 돌아왔다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의 책을 얼굴에 덮고 잠이 들었다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들과 우정을 나눌 차례가 왔고 아침이 왔다
주워온 조약돌 하나를 꺼내어 마주했다 돌이 말을 할 때까지
김소연(1967~)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미묘한 움직임들이 생활을 만든다. 모래알들이 모여 모래사장을 이루듯이. 미묘한 움직임에는 마음의 율동이 일어난다. 높고 낮은 파도가 바다에 일어나듯이. 대개는 이러한 움직임들에 무심하지만 이 시는 그렇지 않다. 가만히 움직이는 것을 바라본다. 원경(遠景)과 근경(近景)을 모두 바라본다.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옛사람에게 가기도 한다. 그리고 침묵하는 돌에게까지도. 별것 아닌 듯한 데서 모든 게 생겨난다. “백색의 햇살”에 자신의 내면을 비추어 보는 것이, 속마음의 능선과 골짜기를 바라보는 것이 썩 잘 어울리는 요즘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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