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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이나 SF를 많이 다루는 매체 ‘기즈모도’의 카슈미르 힐과 수리야 마투 기자는 최근 미국언론재단에서 주는 ‘저널리즘 속 테크놀로지’ 분야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이들이 올해 2월에 쓴 ‘스마트홈’에 대한 기사가 취재와 보도에 테크놀로지를 창의적으로 활용한 사례로 선발된 것이다.

힐과 마투가 취재한 ‘스마트홈’은 상상 속 미래가 아니라 지금 실현 가능한 현재의 공간이었다. 이들이 체험한 ‘스마트홈’은 그다지 멋지지 않았다.

아이디어는 간단했다. 힐과 마투는 힐이 사는 샌프란시스코 아파트를 ‘스마트홈’으로 만들기로 했다. 텔레비전, 진공청소기, 인공지능 스피커 등 전자기기뿐만 아니라 커피메이커, 장난감, 칫솔, 침대까지 최대한 많은 물건을 인터넷에 연결하고 이 기기들이 서로 정보를 주고받도록 한 것이다. 힐이 스마트하게 변한 자기 집에서 사는 동안 마투는 직접 설치한 라우터를 통해 힐의 ‘스마트홈’이 작동하는 상황을 관찰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오래된 집을 ‘스마트홈’으로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1970년대에 지은 힐의 아파트에는 준비한 스마트 기기를 모두 연결할 만큼 전기 콘센트가 많지 않았다. 한 콘센트에 플러그 여러 개를 꽂을 수 있도록 연결 장치를 여기저기 달고서야 겨우 스마트 기기들을 모두 설치할 수 있었다. 힐은 이러다가 집에 불이 나는 게 아닐까 걱정할 정도로 많은 플러그를 꽂았다.

스마트 기기는 종류도 제조사도 모두 달랐다. 인터넷으로 정보만 주고받으면 할 일을 끝내는 기기도 있지만, 집안 곳곳을 돌아다녀야 하는 기기도 있고, 사람 몸에 닿아서 작동해야 하는 기기도 있었다. 이 기기들을 관리하기 위해 힐은 스마트폰에 앱 14개를 내려받고 각각에 접속하기 위한 계정을 따로 만들어야 했다. 연결이 끝난 다음에는 인공지능 스피커를 통해 목소리로 ‘스마트홈’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 기기들은 마치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진 채 우연히 만난 사람들처럼 소통에 어려움을 겪곤 했다.

아침에 눈을 떠 침대에 누운 채로 인공지능 스피커를 향해 “커피 내려 줘”라고 말하면 종종 “알아듣지 못했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인공지능 스피커와 커피메이커는 제조사가 달랐고, 둘 사이의 연결은 매끄럽지 못했다. 여러 차례의 명령 혹은 부탁이 실패하고 나면 결국은 침대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가서 커피메이커의 버튼을 직접 눌러야 했다. 잘 소통하지 않는 스마트 기기들을 다루어야 하는 ‘스마트홈’ 관리자는 매우 부지런하거나 인내심이 깊어야 했다.

힐의 ‘스마트홈’에서 밖으로 내보내는 모든 통신을 들여다본 마투는 ‘스마트홈’이 매우 수다스럽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스마트홈’의 모든 기기는 수집한 정보를 집 밖에 있는 서버로 쉬지 않고 보고했다. 그로부터 마투는 힐 부부의 생활에 대해 놀랄 만큼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모든 정보의 수집, 그것이 바로 ‘스마트홈’의 본질이었다.

마투는 스마트TV가 내보내는 정보를 통해 힐 가족이 2017년 마지막 날 밤 외출하지 않고 집에서 조용히 새해를 맞았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음악 스트리밍 앱 작동 정보로부터 힐 부부가 아침 몇 시쯤 잠에서 깨는지도 유추할 수 있었다. 스마트 칫솔은 힐이 언제 양치질을 하는지 정확하게 알려 주었다. 마투는 스마트 칫솔로 양치질을 잘하는 사람들에게 보험료를 깎아주는 방식의 새로운 보험 상품이 나올 수 있겠다고 예상했다. 마투는 힐 가족이 언제 집을 비웠는지도 알 수 있었다. 주인이 없는 집에서 스마트 기기의 데이터 사용량은 대폭 줄어들더라도 바깥 서버와 연결하는 통신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이 집에는 지금 사람이 없어요”라는 신호를 내보내는 셈이다.

‘스마트홈’에서 프라이버시의 개념은 이상하게 뒤엉킨다. 힐의 집에 잠시 놀러 온 친구는 거기서 자신이 본 텔레비전 프로그램 정보가 밖으로 나간다는 사실을 모를 수 있다. 아기방에 설치해 놓은 카메라가 자신을 찍고 잠시나마 영상을 저장해 둔다는 사실도 모를 수 있다. ‘스마트홈’에 들어오는 사람마다 정보 제공 동의를 받는다고 다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스마트 침대는 수면 정보 수집에 대한 동의를 받을 수 있도록 힐에게 같은 침대에서 자는 사람의 e메일 주소를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한 동의 절차를 거치려면 힐은 자기가 누구와 같이 누워 있는지 스마트 침대에 알려주어야만 한다.

‘스마트홈’은 ‘관찰 예능’ 프로그램 같은 것이다. 온종일 카메라가 따라다니면서 누구를 만나는지, 무엇을 먹는지 공개하는 관찰 예능 속 연예인처럼, ‘스마트홈’에 사는 사람의 일상은 정기적으로 서비스 공급자와 마케팅 회사로 보고된다. 방송 제작자의 편리를 위해 전화를 걸고 받을 때 스피커폰 기능을 사용하기로 동의한 관찰 예능 속 연예인처럼, ‘스마트홈’ 주인은 자신이 어떤 스마트 생활을 하는지 널리 알리는 데에 동의한 사람이다. 일상을 공개한 대가로 인기를 얻는 연예인처럼 ‘스마트홈’ 주인은 정보를 제공한 대가로 편리를 얻고자 한다.

힐과 마투의 기사가 보여주는 것은 그 편리를 온전히 즐기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현재 수준에서 구현 가능한 ‘스마트홈’을 강렬하게 체험해 본 그들은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는 프라이버시 문제보다 더 구체적인 ‘짜증’의 문제를 강조했다. 스마트 기기가 말을 잘 듣지 않을 때 나는 짜증도 있지만, 열심히 일할 때 나는 짜증도 만만치 않다. 스마트 기기들은 자기들끼리 얌전하게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집주인을 호출하고 닦달한다. 집주인의 스마트폰에는 로봇 청소기가 장애물에 걸렸으니 빼달라는 메시지, 일을 잘 마쳤다는 메시지, 혹은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는 메시지가 속속 도착한다. 집주인은 스마트 기기의 부름에 부지런히 응답해야 한다. 스마트 기기의 시중을 들다가 짜증이 난 집주인은 ‘스마트홈’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스마트홈’의 주인은 누구인가.

<전치형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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