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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길을 닦올라면 쇠시랑괭이로 길을 닦아 높은 데는 깎아닦고 깊은 데는 돋궈닦아 불쌍하신 금일망자 생왕극락으로 가옵시네.” 진도 씻김굿에서 길닦음을 하며 풀어놓는 사설이다. 씻김굿은 망자의 한을 달래는 것뿐만 아니라 곁에 있던 이를 떠나보내고 애달파하는 이들을 위로하는 의식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진도에 길을 낸다고 했을 때 씻김굿이 떠올랐다. 4년 전 세월호 참사로 황망하게 수많은 이들을 잃은 그 바다가 보이는 자리, 눈물과 절규 속에서 처참한 시신을 옮기던 그 자리를 에둘러 걷는 길을 낸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은 또 ‘떠난 이들을 기억하자’는 얘기냐며 뒤로 물러섰다. 이제 할 만큼 하였으니 그만하자며 언제까지 그 섬을 상갓집 분위기로 고통받게 할 거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섬에 살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먼저 한다고 나서면 안된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길을 낸다고 나선 이들은 그들의 마음을 헤아렸다. 사실 그들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뒤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추모하는 글과 그림을 새긴 타일을 모아 팽목항 방파제에 ‘기억의 벽’을 만들면서 어떤 이들보다도 진도 주민들이 겪는 고통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진도에서 나온 미역을 나서서 팔고, 진도 초등학교에 책을 보내준 것도 주민들과 고통을 나누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니 그들이 내고자 하는 길은 과거에만 머무르는 길이 아니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참혹한 고통의 순간에 나로부터 우리로 향한 걸음을 내디뎠던 세월호 가족들의 고통의 서사를, 그들을 품고 희망과 사랑을 실현한 진도와 수많은 이들의 서사가 아로새겨진 현장, 팽목을 오래오래 보고 싶다”고 했다. 그들의 뜻을 잘 아는 진도 주민들은 함께 길을 나섰다. 지난해 겨울부터 묵묵히 그 길을 함께 걸은 이들은 올봄 ‘팽목바람길’을 열었다. 그들은 이리 말한다. 길은, 걸으면 사라지지 않는다고.

아픔을 딛고 함께 가는 그 길, 바다도 바닷바람도 하늘도 나무도 풀도 모두 산 자들에게 위로가 될 것이다. 어제 ‘팽목바람길’이 노동당의 레드어워드를 수상했다고 한다. 길을 내느라 고생한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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