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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반려였던 아내를 무덤에 묻고 돌아온 날 밤, 나는 혼자 아내를 만나러 갔다. 아내는 꽃이 만발한 정원 한가운데 놓인 하얀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다. 좋아하는 원피스를 입고, 결혼식 날 그대로의 젊은 모습으로.

“결혼할 때 패턴 저장 서비스를 신청하기를 잘했어. 그렇지?”

아내가 말했다.

“그러게 말야. 흑역사 저장 서비스라고 서로 놀렸는데 말이지.”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내 눈앞의 그녀는 이 가상현실 온라인, VR넷에 상주하는 아내의 3D 아바타다. 우리는 결혼식 날 둘의 모습을 3D 스캔해 VR넷 입주 신청을 했다. 우리 둘의 아바타는 접속할 때마다 대화와 행동유형을 전부 기록해 패턴화한 뒤 대화형 AI에 기록한다. 지난 50년간 수집한 아내의 표정, 버릇, 종종 하던 말들이 내 말에 반응해 자연어처리를 통해 흘러나온다. 예전에는 회사가 서비스를 접으면 디지털 데이터도 같이 사라져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지만 지금은 데이터에 보험을 걸어둘 수가 있다. 이 정원은 우리가 보존비를 내는 한 반영구적으로 보존된다.

“그래서, 나는 죽은 거야?”

아내의 아바타가 물었다.

“그래. 하지만 자주 만나러 올게. 당신 외롭지 않게.”

“바보, 거꾸로잖아. 외로우면 찾아와. 난 늘 여기 있을 테니까.”

“당신도 죽고 나서 우리 둘이 여기 앉아 떠들고 있으면 웃기겠다, 그치?”

“애들에게 기일에 괜히 성묘하러 가지 말고 여기 오라고 해 놨어.”

 

내가 아내를 처음 만난 건 VR 어린이집에서였다. 나는 어린이집 리스트에서 네버랜드를 골랐다. 나는 인어들이 노래하고 해적선이 오가는 바닷가에서 매일같이 놀았다. 거기서 나는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웬디의 모습이었고 나는 피터팬의 모습이었다. 할머니는 내가 VR 어린이집에서 노는 걸 싫어하셨다. 그건 ‘진짜 사회’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현실에서 몸을 부대끼고 진짜 사람을 만나는 어린이집에 보내려 하셨다. 하지만 거긴 너무너무 재미없었다. 현실의 어린이집은 그냥 땀내 나고 갖고 놀 것도 별로 없는 갑갑한 방이었을 뿐이다. 해적도 바닷가도 섬도 요정도 인어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웬디가 없었다.

우리는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로도 밤마다 금빛 모래사장이 펼쳐진 바닷가에서 만났다. 같이 모닥불을 켜고 별을 보며 숙제를 하고 놀다가 헤어졌다. 우리 결혼식도 VR넷에서였다. 해적선 앞에서 피터팬과 웬디 복장을 한 채로였고 후크 선장이 사회를 보았다. 친구들은 모두 요정이나 인어, 해적 복장을 하고 왔다. 우리 둘의 정원에 놓인 디지털 사진첩에는 우리가 함께했던 나날의 사진들이 담겨 있다. 같이 모아 온 조개나 만들었던 장난감도 주변에 놓여 있다.

“이게 진짜가 아니라는 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

아내가 테이블에 놓인 조개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글쎄, 하지만 함께한 시간은 진짜잖아.”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만났어도 서로 사랑했을까?”

 

부산에 살던 그녀와 춘천에 살던 나는 고등학생 때 처음 오프라인에서 만났다. 나는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그래도 헤어질 준비를 했다. 그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왔다는 걸 만나서 알았다. 그녀는 그날에야 내가 걷지 못하는 줄을 알았고, 나는 그녀가 말을 못하는 줄을 알았다.

“그걸 속인 거라고 할 수 있을까?”

아내가 물었다.

나는 피터팬이었고 그녀는 웬디였다. 웬디는 수화와 글자를 음성프로그램으로 변환해 만든 목소리로 신나게 떠들었고 나는 웬디의 손을 붙잡고 네버랜드 안을 뛰어다녔다. 우리가 서로의 모습이나 목소리가 진짜라고 믿고 사랑했던가? 그 세계가 진짜라고 믿고 즐겼던가? 우리의 추억은, 함께 나눈 시간은 그 자체로 다 진실이 아니었던가?

“그러지 못했을지도 몰라…. 애들은 편견덩어리니까. 하지만 그러지 않아서 잘된 거잖아. 우린 축복받았다고 생각해.”

아내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우린 축복 받았지.”

“내일 다시 올게.”

우리는 껴안고 키스를 했다. 그날 그 역에서 했던 것만큼이나 정열적으로. 나는 외롭지도 슬프지도 않다. 그녀는 여기에 계속 있을 테니까. 언제까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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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맨의 실제 모델로도 알려진 기업인 일론 머스크는 미래 인류가 가상현실에서 살지 않을 가능성은 10억분의 1이라고 말한다. 지금 가상현실의 발전 속도가 1000분의 1로 줄어든다 해도, 우리가 현실과 구분이 사실상 불가능한 가상현실을 만들 것은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다. 선도적인 로봇기업 핸슨 로보틱스사의 데이비드 핸슨은 필립 K 딕의 생전 편지와 인터뷰를 모아 대화형 로봇을 만들었다. 동영상과 대화기록을 예전과는 비할 수 없이 방대하게 저장할 수 있는 지금, 죽은 사람을 가상현실에서 대화형 AI로 구현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 같다.

기성세대의 이해도가 가장 떨어지는 문제 중 하나가 ‘가상현실’이 아닐까. 이미 아이들은 온라인게임 안에서 소통하고 사회화를 하는데, 어른들은 이 세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2011년 제정된 청소년보호법 제26조, 이른바 ‘셧다운제’는 그 몰이해의 한 상징이다. 청소년의 수면권을 주장하며 ‘밤’에 미성년자가 게임에 접속하지 못하게 한 이 제도는, 그 효용성을 다 떠나, 게임을 한국 사람만 만들어 국내에서만 서비스하고 지구가 자전하지 않고 세계에 단 하나의 시간대만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나 만들 법한 제도였다. 덕분에 중학생 유망주 프로게이머가 프랑스에서 열린 e스포츠 경기를 하다 한낮에 강제 로그아웃되어 패배하는 웃지 못할 사건마저 있었다. 그 법을 만든 분들은 가상세계 안에서는 지구촌의 시공간이 하나인 줄도 몰랐던 것 같다. 게임을 비롯한 디지털 세상은 아이들에게 이미 삶의 일부고 그 영향도 지대하다. 그래서 없어져야 한다고 소리 높이는 것이 아니라, 그러므로 더 좋고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자는 생각을 하는 게 맞지 않을까.

김보영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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