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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말했다.

“저희 모바일 하우징 제품은 정말 완전 미래 신기술이거든요. 이거는 걸어다니는 집입니다. 움직여서 이동시킬 수 있는 집이거든요.”

나는 다시 소개 자료를 들이밀었다. 우리 회사의 제품은 공장에서 한 덩어리로 찍어내는 집이었다. 신소재로 만들어진 우리 회사 제품은 가벼워서 트럭에 통째로 올려놓고 그대로 운반할 수 있었고, 그러면서도 튼튼하고 안전해서 트럭에서 내려놓기만 하면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전기, 수도, 인터넷을 연결하는 것도 최대한 간편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빈 땅만 있으면, 예전처럼 집 짓는 데 드는 돈과는 비할 바 없는 싼값으로 건물을 세워놓을 수 있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뭐, 그럴듯하기는 한데요. 요즘 인구가 줄어서 빈집이 남아도는 판에 이런 걸 왜 사겠습니까? 언뜻 보니까 공사판 컨테이너 가건물 비슷한 이야기 같은데요. 무슨 캠핑카도 아니고….”

“아니오. 그런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내부를 보시면 가건물이나 캠핑카가 아니라 완전 그냥 집이고요. 신혼부부 집이나 학생들 기숙사로 좋고요. 정말 엄청 싸면서도 좋은 집이 되는 거거든요.”

옆에 앉아 있던 영란 선배는 나에게 살짝 다른 눈빛을 보냈다. 텄으니 포기하라는 뜻이었다.

그날 우리는 여덟 군데를 더 돌아다녔지만 마찬가지였다. 내가 이야기하면 “귀찮게 하지 말고 꺼져라”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영란 선배가 이야기하면 “꺼져 주시지 않겠습니까?”라는 말을 듣는 정도의 차이밖에 없었다. 어린이가 없는 인구 절벽 시대를 지나면서 집을 살 사람이 없어 세상에 집이 남아돌고 있었다. 그나마 부동산 시장이 무너지면 경제가 망가진다고 온갖 정책이 나와 있는 덕분에 집값이 단숨에 폭락하는 일은 흔치 않았지만, 우리 회사의 사업은 구덩이에서 헤어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길거리 벤치에 앉아 아픈 다리를 쉬었다. 캔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넋두리를 하고 있는데, 얼마 후 거리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슨 시위대가 지나갔다. “화장터 건립계획 당장 철폐하라!”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시위대의 행진이 꽤 멀어질 때까지 우리는 대화를 하지 못했다. 영란 선배는 나에게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 말의 뒷부분만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 좋은 생각 같지 않아? 시청 담당자부터 찾아가 보자고.”

그게 우리 사업의 돌파구였다. 영란 선배는 시청, 구청 담당자들과 지역구 국회의원 보좌관들을 만나 설명했다.

“복지정책은 많은데, 시설 짓는 데 돈은 많이 들지 않습니까? 게다가 건설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완공되기 전에 임기가 지나버리면 아무래도 다음 선거 때 업적 홍보하기에도 안 좋고요. 그런데 저희 회사 제품은 그냥 공장에서 찍어내 차에서 내려놓으면 그게 건물이거든요. 임기 안에 바로 세워서 운영할 수 있어요. 게다가 그거 말고도 정말 좋은 장점이 하나 더 있고요.”

그리하여 우리 회사 제품은 여러 지역의 공공 건물로 팔려 나갔다. 특히 주변 시민들이 기피하곤 하는 시설이 주력 상품이었다. 우리는 노숙인 쉼터, 노인 요양원, 난민 수용소로 쓸 수 있는 건물을 팔았다. 시에서 갖고 있는 땅에 적당한 공터만 있으면 하룻밤 사이에 그곳은 많은 사람들이 지낼 수 있는 마을로 바뀌었다. 공영 주차장에다 우리 회사 제품을 설치해서 하루 사이에 갑자기 저소득자 전용 병원을 만든다거나 하는 일도 흔했다.

“영란 선배, 시에서 이동 연락 왔어요.”

“그러면 또 이동 수수료 벌 수 있겠네.”

그리고 우리는 그 건물로 그 후에도 계속 수익을 냈다. 그런 시설을 건설해 놓으면, 인근의 주민들이 집값이 떨어진다고 항의 시위를 하러 왔다. 그러면 시 당국에서는 적당히 버티다 어지간한 시점에 우리 회사에 다시 건물을 이동시켜 달라고 주문을 낸다. 그때 우리는 그 건물들을 철수시키는 사업을 하면서 돈을 또 받는 것이다.

첨단 소재로 되어 있는 우리 회사의 건물은 그대로 달랑 들어 차에 실어 또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다. 그리고 옮긴 그곳에서도 누가 몰려와 항의하며 시위하면, 다시 우리는 집들을 또 옮긴다.

이번에 간 곳은 장애인 학교였다. 기록을 보니, 이전에도 이미 세 번 자리를 옮긴 적이 있는 제품이었다. 야적장 자리에 설치된 몇 개의 우리 회사 제품은 어린이들의 교실과 도서관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 나온 주민들이 에워싸고 꽹과리와 징을 치면서 물러가라고 소리 지르고 있었다. 상황을 모르는 어떤 어린이는 북소리에 맞춰서 자신의 학교 울타리 안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그 꽹과리와 징은 빠른 리듬으로 연주되고 있었지만, 시위대의 목소리는 나름대로 또한 애절했다. 얼기설기 복잡하게 엮여 있는 수십 가지 정책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집값은 시위대의 전재산이었다. 삼십 몇 퍼센트 득표로 당선된 시장이 세금으로 생색내려는 공약 때문에 왜 우리가 재산을 날려야 하느냐는 외침이 운율을 맞춘 구호가 되어 메기는 소리 받는 소리로 울려 퍼졌다.

현수막과 깃발은 온갖 색깔로 펄럭였고 어김없이 또 기자들이 몰려들어 이 구경거리를 TV 화면으로 중계하고 있었다.

학교의 어린이들은 집을 들어 옮기려는 우리 회사 장비를 신기하게 바라보거나 뛰어다녔다. 영란 선배와 함께 그 어린이들을 데리고 또 다른 공터로 떠나는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이 모든 광경이 다 같이 어릿광대가 되어버린 서커스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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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구조의 변화와 건축기술의 발전은 주택 시장을 계속해서 다른 양상으로 바꾸어 나갈 것이다. 여기에 계속해서 늘어나는 주택 시장에 대한 다양한 정책들은 지역 공동체 이익집단을 새롭게 분화시키고 그 갈등은 더 복합적으로 변할 것이다. 이에 대한 여러 대책들을 상상해 볼 수 있겠지만, 정부와 당국의 정책이 투명하고 정당한 절차를 거쳐 수립되고, 그런 정책이 시간이 지나도 일관성 있게 추진된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 최소한의 바탕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곽재식 화학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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