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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나 권유 사항입니다만.”

현종은 친구 청화의 스마트링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를 듣고 들키지 않도록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 말은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이었다. 이 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 역시 각자의 언어로, 조금씩 다른 표현으로 가장 자주 듣는 말이기도 했다.

“유청화씨는 바질 페스토 파스타를 드시고, 친구로 등록된 최현종씨는 알리오 올리오를 드시면 어떨까요?”

청화가 손목에 착용한 스마트링의 개인비서는 저녁 메뉴를 골라주었다. 청화는 현종을 흘끗 쳐다보았다. 현종이 고개를 끄덕이자 청화는 스마트링을 쓰다듬어 주문을 마쳤다. 링은 식당에 마련되어 있는 수신장치로 주문 내용을 전송했다. 현종은 자신과 청화가 저녁 식사로 주문한 음식과 점포의 위치가 거대한 데이터 모음 속에 나이테처럼 영원히 새겨지는 광경을 떠올려보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현종이 정말로 알리오 올리오를 먹고 싶다는 점이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정기검진 날짜는 아직 멀었는데 며칠 전에 개인비서가 산부인과 진료를 추천하더라. 너도 알지만 빅데이터로 도출한 예측은 아주 잘 맞잖아. 그래서 시키는 대로 병원에 갔어. 최근 2년간 내 나이대 여자들의 특정 산부인과 질환이 급증하는데 나도 그 조건에 맞았던 모양이야. 바이오칩이 실시간으로 보내는 신체 정보만으로는 확인이 어려운 병을 몇 가지 찾아서 치료받는 중이야.”

신뢰에 푹 젖어 파스타 맛을 감상하는 청화와 달리 현종은 요새 빅투유(Big to You)라는 빅데이터 활용 서비스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빅투유 서비스는 얼마 전 자동차 구입이나 병원 진료를 권유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메일을 보냈다.

“최현종님께. 빅투유 서비스가 보내는 메일입니다. 이 메일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권유 사항이라는 점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빅투유는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하는 서비스입니다. 아시다시피 빅데이터는 정형화하고 정량화할 수 없는 자료를 분석하는 방법에 따라 그 활용도가 무궁무진합니다. 그중에서도 빅투유는 고객께서 실생활과 유무선 서비스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수행하는 각종 선택 사항을 분석하고, 체내 신경물질과 호르몬의 농도 변화와 연계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개인의 심경변화, 직업의식, 안정추구욕, 모험심 등을 수치로 도출할 수 있었습니다.”

현종이 착잡한 심경에 사로잡힌 건 바로 그 메시지 내용을 끝까지 들은 다음부터였다.

“고객님, 본인의 직업에 회의를 느끼고 퇴사를 고민하고 계시지요? 빅투유 서비스가 분석한 결과 고객님은 최근 들어 취향과 창의성 수치가 급격히 바뀌었습니다. 이제 창작도가 높은 일을 해야 만족도가 올라갈 것으로 보입니다. 고객님을 표현하는 해시태그는 현재 #전위적, #낙관적, #소수지향적입니다. 그리고 5년간 축적한 자료에 따르면 고객님의 기본 미술실력은 72/100점. 따라서 ‘사이드그라운드’라는 웹진의 기획자 겸 일러스트레이터를 추천하는 바입니다.”

그 뒤로 현종은 ‘자유의지’란 과연 무엇인지 고민에 빠졌다. 그는 정말로 퇴사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사이드그라운드’를 새 직장 후보로 고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분석의 대상이 되고 행동을 예측할 수 있는 존재였던가? 내 즉흥성과 고유함은 겨우 그 정도일까? 현종은 만족스럽게 파스타를 먹고 있는 친구의 얼굴을 보면서, 빅데이터라는 이름의 거대한 수조가 모든 인간을 다 담고 있는지 계속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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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의 일차적인 뜻은 매우 직관적이다. 빅데이터란 기존에 사용하던 자료관리 도구와 기법으로는 포용할 수 없는 엄청난 양의 자료를 가리킨다. 하지만 자료란 활용을 전제로 한 정보이기 때문에, 수집 및 활용 방법에 따라 빅데이터는 경제가치 창출과 직결될 수도 있고 여러 분야에서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도 있다.

웹을 통해 주문하려는 상품을 추천하거나, 신용카드 소비 패턴을 분석하고 걸맞은 카드 상품을 권하는 것은 이제 흔히 볼 수 있는 자료의 활용 예다. 그런데 빅데이터를 이용해 새 미래 사업을 펼치겠다는 업체들은 그 정도에서 만족하지 않고 모든 국민의 소비행태, 의료정보, 검색 결과, 심지어 말과 행동까지 자료화시키겠다고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 어떤 세상이 도래할까? 그 본격적인 모습 일부는 지금도 살짝 엿볼 수 있다.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의 선거 때 빅데이터가 언급되는 광경은 이제 낯설지 않다. 통계에 포함시킬 수 있는 교통수단 이용 현황은 실제로 교통량 조정에 활용되고 있다. 전염병 전파 경로와 인구 이동, 인구 분포 등의 자료를 종합하고 분석한 결과는 실제로 유효한 예방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면 그처럼 알기 어렵다는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우리의 신체 내부와 뇌에서 벌어지는 모든 물리 현상을 계량하고, 우리가 외부로 내보이는 반응과 선택을 전부 자료화한다면, 우리 자신 역시 그처럼 거대한 데이터 속 어딘가에 존재하게 될까? 아니면 우리는 계측과 분석으로 정의할 수 없는 특별한 존재일까? 데이터에서 정의를 뽑아낼 수 있는 존재가 우리라면, 그 사실이 확인된 순간 우리는 기존과 똑같이 살아야 할까? 아니면 삶의 방식을 재고해야 할까?

빅데이터가 더 친숙한 일상 용어로 자리 잡기 전에, 우리 자신의 고유성을 찬찬히 돌아보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김창규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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