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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이럴 거면 보험을 안 들겠다니까요!”

“고객님, 자동차를 구입하시려면 보험 가입은 필수입니다.”

“그러니까 필수로 들라고 하면 나한테 선택권은 줘야 할 거 아뇨?”

“… 과학적 통계에 따라 책정된 보험료이기 때문에 고객님께만 특혜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나는 22년 무사고 운전자다. 늘그막에 차 한 대 새로 장만하려 했더니 화딱지가 나서 죽겠다. 요즘 다들 자율주행차를 타지만, 당최 컴퓨터한테 운전을 맡길 마음이 안 난다. 그래서 없는 돈 박박 긁어다가 수동 운전도 가능한 비싼 모델을 구입했다. 그런데 자동차 보험에 가입하려니까 자율주행차량이 아니고 내가 직접 운전하면 보험료가 엄청나게 높다는 것이다.

보험가입 신청서를 작성하는데 운전모드 선택 항목이 있었다. 보험설계사는 지나가는 말투로 ‘아 그건 그냥 <자율주행>에 체크하시면 되고요…’ 하길래 ‘아니 난, 직접 운전할 건데요?’ 했더니 한동안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마 뭐라고 설득하면 좋을까 속으로 궁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 직접 운전하시면 보험료가 좀 많이 나오는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냥 자율주행으로 하시면 되는데요. 남들 다 그렇게 하듯이.”

“아 난, 컴퓨터를 못 믿겠어요. 그리고 내가 이래 봬도 무사고 운전 20년이 넘어요. 직접 운전하는 게 훨씬 안전해요.”

“그러면 일단 보험료를 다시 산정해드릴게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그렇게 해서 나온 보험료는 예상을 뛰어넘는 고액이었다. 게다가 이것저것 추가 서약서도 요구했다. 본인 과실로 사고 발생 시 자동차 회사에 어떤 책임도 묻지 않겠다, 교통흐름 데이터 수집 비용으로 추가 요금이 발생해도 감수하겠다, 일단 수동 운전 옵션으로 보험에 가입하면 1년간 해지할 수 없다 등등….

분통이 터졌지만 도저히 그대로 보험료를 낼 수는 없겠기에 숨을 좀 가라앉힌 뒤 따지기 시작했다. 나이는 칠순을 넘겼어도 나는 아직 청년이나 다름없이 건강하다. 눈도 잘 보이고 운동신경도 둔한 편이 아니다. 지금도 매주 등산을 한다.

“고객님의 건강 상태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운전을 하실 수 있는 기본적인 신체 건강만 유지하시면 됩니다. 문제는 옆에 다른 자율주행차량들과 교통정보 교환을 하실 수가 없다는 점이에요.”

“네? 그건 차에 경보 장치가 있잖아요? 차가 너무 바짝 붙거나 하면 삑삑거리니까 조심하면 되죠. 난 그거 잘 못해서 사고 낸 적 한 번도 없어요!”

“자율주행차량들끼리는 전부 IoT(사물인터넷)로 연결되어서 자동으로 스무스하게 차간 거리나 상대속도 등이 조절됩니다. 바로 앞, 뒤뿐만 아니라 대여섯 대 앞의 차들하고도 정보를 주고받죠. 그런데 사람은 컴퓨터에 비해 반응 속도가 너무 느립니다. 사고가 나지는 않더라도 자율주행차들끼리 다니는 것보다 훨씬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고객님께서 아무리 운전을 잘하셔도 자율주행차량들 틈에 끼어서 다니시면 전체 교통 흐름의 효율을 떨어트릴 수밖에 없어요. 수동운전자에게 보험료를 더 많이 내라고 하는 이유는 자율주행차보다 운전을 못해서라기보다는 교통 효율을 떨어뜨리는 데 대한 분담금의 성격이 높아요.”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아들 녀석이 지나가는 차를 보면서 혼잣말했던 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

“이야… 부자인가 보네. 운전도 직접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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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차가 대세가 되고 나면 교통 인프라는 근본적인 재편 과정을 겪을 것이다. 도로와 차로 폭은 지금보다 더 좁아지겠지만 교통 소화량은 오히려 늘어날 것이다. 자율주행차량들끼리 서로 데이터통신을 해서 항상 최적화된 주행 상태를 유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토지에서 도로가 차지하는 면적은 점점 감소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고, 주차 공간도 계속 지하로 들어갈 것이다. 자율주행차량에 의한 무인 주차가 일상화될 테니까. 이렇게 생기는 여유 면적은 공원 등 녹지나 기타 여러 가지 지역공동체의 요구에 부합하는 다양한 용도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전망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AI(인공지능) 컴퓨터에 사회 각 분야 인프라 시스템의 운영을 어느 정도까지 맡길 것인지 깊은 사전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 과연 최선인지, 아니면 어느 정도의 비효율성을 감수하더라도 인간에 의한 운영의 여지를 상당 부분 남겨두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더 좋을지 다양한 시나리오와 시뮬레이션을 통해 미리 가늠해봐야 한다.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최적의 수익 모델을 추구하는 것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본성이겠지만, 그것이 곧 휴머니티와 동일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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