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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생은 안 오십니까?”

“아…모르셨어요? 지난달에 돌아가셨는데.”

석 달 만에 다시 열린 동네 애서인 모임에서 박 선생은 내 대답에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뭐라고 덧붙이려다 그냥 입을 닫고 말았다. 얘기해 봐야 더 안타까울 뿐이다.

동네에서 책 좋아하는 사람들 몇몇을 모아 애서인 모임을 만든 건 김 선생이다. 그동안 모임 이름도 없이 몇 번 모였다가 ‘다음번엔 멋지게 하나 지읍시다!’ 하고 웃으며 손을 흔든 게 김 선생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를 처음 만난 건 설 연휴 때였다. 재활용쓰레기 버리는 곳에 쌓인 책들을 뒤적이다가 뒤표지가 찢어진 <화씨451>을 집어 들고 살펴보는데 그가 문득 말을 걸어왔다.

“그거 첫 번역판이네요. 보기 힘든 건데. 번역자가 엉뚱한 사람으로 나와 있거든요.”

그 몇 마디에 심상치 않은 내공(?)이 느껴졌고, 그 자리에서 선 채로 한 시간쯤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요즘 세상에 그 정도로 책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드문 일이었다. 다독가는 많지만 책이라는 물성 자체를 아끼는 애서가는 점점 멸종해가고 있었다.

그다음 주였나, 김 선생을 따라 옆 동네의 작은 독립서점에 갔었다. 진작부터 한번 가봐야지 하고는 바빠서 통 발길을 주지 못하던 곳이다. 주인과는 잘 아는 사이인 듯 두 사람은 인사도 생략하고 곧장 신변 이야기부터 나누었다.

“재계약했어요?”

“…아뇨. 정리하기로 했어요. 남편도 직장을 옮겨야 해서.”

“아이고… 참.”

김 선생은 그 서점이 폐업을 고민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는 그곳에서 알게 된 몇몇 동네 손님들과 대책을 논의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서점이어도 한 줌밖에 안 되는 단골 고객들로는 안정적인 경영이 어려웠다. 결국 지난봄에 서점이 문을 닫은 뒤에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이 애서인 모임이었다.

지난번 모임에서 김 선생은 불콰해진 얼굴로 맥주잔을 집어 들다 말고 말했다.

“진시황의 분서갱유도, 나치 독일의 분서도, 1970년대 우리나라의 소위 불량만화 화형식도 다 한때의 과거일 뿐이었는데… 이건 뭐 어떻게 거스를 수가 없을 거 같아요.”

나 역시 그의 말에 깊이 공감하고 있었기에 그저 침묵만 지켰다. 도서관들이, 서점들이, 그리고 책들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전자책이 종이책의 자리를 대체한 지는 오래되었다. 학교나 도서관에서 전자책이 지닌 정보단말기로서의 장점은 종이책이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경지였다. 주말마다 재활용쓰레기장에 책이 잔뜩 쌓이는 일이 벌써 몇 년째 계속되고 있었지만, 그 기세는 수그러들 줄을 몰랐다. 도서관의 책들은 극히 일부만이 보존서고에서 생명을 유지했고 방대한 공간을 자랑하던 열람실은 시시각각 전자식으로 탈바꿈했다. 책은 이제 더 이상 정보나 교양을 전하는 수단이 아니라 단지 소수의 사람들만이 탐닉하는 문화재일 뿐이었다.

지난달 초, 갑자기 김 선생의 딸이 연락해 오면서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을 알게 되었다. 이미 장례까지 치른 뒤였고, 딸은 아버지가 남긴 5000권 가까운 책들을 어찌 처분해야 할지 몰라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모두 재활용쓰레기로 버리려다가 생전에 책을 아끼던 아버지 생각이 나서 차마 그러지 못하고, 고인의 수첩에서 애서인 모임의 내 연락처를 찾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책들 중에서 고서적으로 가치가 있거나 그나마 중고서점에서 매입할 만한 책은 채 100권도 안 되었다. 책 하나하나는 모두 인류의 지적 유산이 담긴 위대한 내용들이었지만 도서관에서는 더 이상 개인 장서를 기증받지 않고 있었다. 어차피 훨씬 더 풍부한 인터페이스가 달린 전자책으로 소장되어 있는 텍스트들이었다. 정말 피하고 싶었던 일이지만, 결국 그가 남긴 책들 대부분은 그냥 폐지로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무거운 표정으로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박 선생에게 말했다.

“<화씨451> 읽어보셨나요? 책이 금지된 사회 이야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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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10대들은 새로운 정보를 검색할 때 구글 같은 문자 포털사이트가 아니라 유튜브부터 먼저 찾아본다고 한다. 즉 문자매체가 아닌 시각매체, 그중에서도 동영상매체를 가장 익숙하게 느낀다는 말이다. 스마트폰이 대세가 된 것은 2010년 이후이다. 21세기에 태어나 자란 세대는 바로 이 시기 즈음부터 초등학생 시절을 보내며 동영상매체라는 환경을 마치 숨 쉬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정보단말기로서 책은 이제껏 절대적인 지위를 누려왔다. 작동하는데 에너지가 필요 없고, 어린아이라도 금방 사용법을 익힐 수 있으며, 거친 충격도 문제없이 견디는 튼튼한 내구성을 지녔다. 그래서 앞으로도 책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했다.

그러나 문자매체보다 시각매체, 동영상매체를 더 편하게 여기는 인류 역사상 첫 세대가 등장하면서, 책의 장점들보다 단점이 점점 더 두드러지는 시대로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이 생긴다. 한마디로 말해서 21세기는 ‘구텐베르크 마인드’가 저물어 가는 시대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건 단순히 매체 환경의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문자에 기반을 둔 지적 사유를 하는 기성세대와, 이미지를 사고의 기본 도구로 사용하는 새로운 세대. 과연 이 둘의 차이는 인류 문화사에서 어떤 의미를 나타나게 될까?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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