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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반신반의했다. ‘이게 과연 될까? 차라리 책을 읽거나 상담소를 가는 게….’

사실 멘토링하는 인공지능(AI) 얘기는 진작 들었지만 그때는 관심이 없었다. 삶이 딱히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거짓말처럼 직장에서 잘리고, 몇 달을 우물쭈물하다 겨우 시작한 카페를 1년도 못 가 접고, 간신히 조그만 물류업체의 총무 일을 맡기까지 인생은 꾸준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결정적으로 아내가 별거를 선언했다. 아이를 데리고 떠나면서 남긴 말이 마음에 쓰리게 남았다. “당신은 일이 안 풀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성격이 문제야! 늘 남 탓만 하고 운이 나쁘다고만 하지. 원인이 당신에게 있다는 생각은 안 들어? 아이가 뭘 보고 배우겠어?”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술로 달래면서 괴로워하던 나날 중에 문득 TV프로그램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어떤 사람이 인공지능에게 멘토링을 받다가 로봇을 때려 부수고 만 사연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가사 도우미를 하는 로봇이었는데 새로 멘토링 프로그램을 깔고 나서 처음에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다. 기존의 충실한 비서 역할을 넘어서 몸과 마음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코칭을 하나둘씩 조곤조곤 해 주었고, 그러다 보니 인공지능에 대한 신뢰도나 의존도가 점점 더해갔다고 한다.

그럴 즈음 인공지능 회사에서 멘토링 프로그램의 업그레이드를 할인 가격으로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SNS, 운전 기록, 신용카드 기록, 각종 사회활동 등등 사이버스페이스에 남아 있는 모든 정보들에다 그동안 인공지능 로봇이 함께 살면서 관찰한 데이터들까지 더한 ‘생애 빅데이터’를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사실상 사용자와 똑같은 복제 인격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과 똑같은 인공지능 인격을 대하게 되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어 훨씬 성찰의 깊이가 더해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자신의 인격을 복제한 인공지능 로봇과의 동거생활을 단 한달 만에 스스로 끝내고 말았다. 자신이 이렇게 짜증나고 제멋대로인 성격인 줄 처음 알았던 것이다. 평소 스스로가 조금은 까탈스럽고 고집이 있는 편이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사회생활에 문제가 될 정도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함께 살면서 사사건건 부딪치는 부분들은 갈수록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한편으로는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었나 하는 자괴감도 점점 커져갔다. 그의 인격이 복제된 인공지능은 더 이상 자상한 멘토가 아니었다. 그와 똑같이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고 짜증내면서 참견하고 조언하는 동거인일 뿐이었다. 결국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인공지능 회사에 인격 복제 멘토링 프로그램의 제거를 요청했지만, 개인 신상 정보와 관련되어 기술적, 행정적 절차가 복잡하다면서 엄청난 비용의 청구서를 받았다. 사실은 애초의 계약 조건에 들어 있었던 내용이었다. 결국 그는 분을 참지 못하고 로봇을 때려 부수었고, 자동 경보로 연결된 보안업체가 출동하면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프로그램은 그와 함께 인격 복제 멘토링 인공지능의 다른 몇 가지 사례들도 소개했다. 자신의 생애와 인격이 복제된 인공지능과 오래 생활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있었다. 유서에는 “삶이 덧없다”는 짤막한 글만 남아있었다고 한다.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무슨 고민을 하다 스스로 세상을 등졌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또 다른 경우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사람도 있었다. 중년의 나이가 될 때까지 성적 정체성을 애써 억누르고 부정하며 살다가, 자신의 생애와 인격이 복제된 인공지능을 보고는 과감하게 용기를 낸 사람이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왜 그렇게 스스로를 부정하고 살았는지 후회가 된다며 인공지능 덕분에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보고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그 프로그램을 보고 난 뒤 과감하게 비싼 비용을 치르고 구입한 인격 복제 인공지능과의 몇 달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때려 부수었다는 사람의 심정이 이해가 될 때도 있었고,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고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내가 이런 삶을 살아왔나, 이런 답답한 인간이었나 하는 생각에 밤잠을 못 이루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은 나 자신이 변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솔직히 아직은 인공지능한테 고맙다는 생각까지는 안 들지만, 아무튼 내일은 별거 중인 아내에게 전화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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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즈음에 전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정보들의 아날로그와 디지털 비율이 대략 5 대 5가 되었다고 한다. 이때를 이른바 ‘디지털 시대’의 시작으로 본다. 그리고 그로부터 불과 5년 뒤인 2007년에는 전 세계 모든 정보의 94%가 디지털 형태가 되었다. 2011년 ‘사이언스’지에 실렸던 자료이다. 아날로그 형태의 정보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디지털 정보가 그만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이며 그런 추세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빅데이터’의 시대에 인공지능이 갈수록 정교해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한 번에 저장하고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많아지면서 단순히 바둑 같은 한정된 분야가 아니라 일상의 삶과 같은 복잡하고 변수 많은 상황에서도 인간보다 더 현명하게 판단하는 인공지능이 등장할 것이다. 서점에서 자기개발서를 사서 읽기보다 인공지능한테 멘토링을 받는 게 더 효과적인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만큼 인간과 관련된 빅데이터의 양은 막대하게 축적되어 가고 있다. 사실 인간의 자존심이나 존엄성을 내세우기에는 우리는 너무나 불완전한 존재가 아닌가?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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