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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지난 9월 <고래먼지>라는 4부작 SF 웹드라마를 제작, 발표하였다. 2053년 한국을 배경으로 소녀와 기상캐스터가 인공지능과 함께 바다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를 다룬 이 드라마에서 ‘미래’는 두 가지 것을 중심으로 그려진다.

첫번째는 미세먼지다. 뉴스는 미세먼지 농도가 ‘매우나쁨’ 기준의 10배가 넘는 1527㎍/㎥라는 예보, 여전히 내리지 않는 비, 계속되는 인공강우 실험 실패 소식을 전달한다. 황토빛 먼지가 자욱한 대기 속으로, 그리고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진 땅 위로 나서는 일은 지하의 완벽히 제어된 공간 속에서 사는 인간에게는 큰 모험이다. 푸른 숲과 파란 하늘은 창처럼 만들어진 디스플레이에서 비칠 뿐이다. 두번째는 인공지능이다. 인공지능은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넘어서 각별한 관계를 맺는 물체로 등장한다. 등장인물들은 인공지능과는 일상적으로 교감하지만 사람과 교감을 하는 일은 오히려 예외적인 사건에 가깝다. 인공지능은 기계라기보단 홀로그램으로 형상화된, 엄마의 목소리를 가진 금붕어나 아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미세먼지와 인공지능은 미래를 상징하는 것이 되었다. 다만 미세먼지는 절망, 인공지능은 희망이다. 지난 9월12일 ‘미래 오디세이’ 칼럼에서 전치형 교수는 “인공지능과 인공지구에 대한 관심과 행동의 심각한 불균형”을 지적한 바 있다. 인공지능이 지금까지 보여준 것에 비해 인공지능이 가져올 변화에 대해 미리 호들갑을 떠는 반면, 지구가 지금까지 보여준 심각한 변화에 비해 앞으로 지구에 닥쳐올 상황에 대해서는 무심하다는 것이다. 상대적이기는 해도 호들갑과 무심함 속에서 기계의 미래는 인간이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것으로, 지구의 미래는 인간이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관점에서 기계는 희망과 성공, 지구는 절망과 실패가 된 웹드라마 속의 미래 묘사는 꽤나 적절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구의 미래에 대해서 관심과 행동이 부족했다는 것은 여러 영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행동’의 부족은 종종 책임 회피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미세먼지가 대표적인 예다. 지난 몇 년간 늦가을부터 봄까지 심각한 수준의 미세먼지를 경험한 사람들은 미세먼지의 원인을 중국에서 찾았다. 중국의 느슨한 대기규제와 증가한 산업시설, 석탄을 이용하는 난방 방식은 물론이거니와 한국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산둥성으로 베이징 주변의 산업시설을 대거 이전한 것이 한국의 미세먼지 오염이 심각해진 원인이라는 것이다. 

다행히 최근 들어 ‘우리’의 책임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듯하다. 경향신문은 10월 한 달간 5회에 걸쳐 ‘미세먼지 해외견문록’이라는 기획 기사를 내보냈다. 본격적인 미세먼지 철을 앞두고 중국, 싱가포르, 미국, 독일, 프랑스의 정책가, 과학자, 법학자, 활동가, 지역주민을 만나 대기오염에 대한 각국의 대응방식을 취재했다. 이 연재 기사의 메시지는 두 가지다. 첫째, 미세먼지를 비롯한 대기오염 문제는 정치외교적 문제이자 과학적 문제이다. 둘째, 국경을 넘어 유입되는 대기오염 물질도 중요하지만 단호하고 체계적인 국내 대기오염 저감 정책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국 미세먼지의 원인은 중국에 있다는 ‘정설’과도 같은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기자는 “미세먼지로 뒤덮여가는 한국 사회”에 이렇게 묻는다. ‘다른 나라 탓만 하면서 한국 내 미세먼지 배출원에는 눈감고 있는 것 아닌가.’ ‘정부는 지자체는, 시민은, 기업은 미세먼지 농도 개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있는가.’

미래를 예측하고 대응하기 위해 전례없는 노력을 기울이고도 많은 이들을 좌절하게 하는 지구 문제는 아마 기후변화일 것이다. 지난 1990년 첫 보고서를 시작으로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는 그동안 지구 온난화를 늦추기 위한 인간의 개입이 필요함을 소리쳐 왔다. 지난 10월8일 인천 송도에서 열린 총회에서는 이러한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를 채택함으로써 한 겹의 목소리를 더했다. 이 보고서는 그동안 섭씨 2도 이상 온난화가 진행될 경우 지구는 재앙적인 상황을 맞게 된다는 주장을 수정하여 섭씨 1.5도 수준의 온난화 또한 인간과 자연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2030년까지 인류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0년 배출량보다 45% 줄이고, 2050년까지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그 어느 때보다 다급한 지구의 목소리는 이제 열렬한 반응을 받을 수 있을까.

지금의 지구를 만드는 데 인간이 기여한 바를 지구의 역사에 기록하려는 노력도 최근에 좌절되었다. 그동안 일군의 학자들은 인류가 지구에 끼친 영향을 지질학적 시대 구분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인류세(Anthropocene)라고 잠정적으로 명명된 이 시기의 시작점으로 석탄 사용으로 대기 구성에 변화가 일어난 산업혁명기나 핵무기 사용으로 지층에 방사성 동위원소를 남긴 1945년 등이 기준으로 제안된 바 있다. 그러나 지난 7월 국제층위학위원회는 지난 4200년 전 발생한 대가뭄으로부터 현재까지 시기를 ‘메갈라야기(Meghalayan Age)’라는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로 분류한다고 발표했다. 주요 문명들을 멸망 위기에 몰아넣기도 한 이 대가뭄의 결정적 지표가 발견된 인도 메갈라야 지역의 이름을 딴 시기 구분이다. 이 발표는 즉각 인류세를 주창한 학자들을 중심으로 반발을 낳았다. 메갈라야기의 공식적 채택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만든, 혹은 망가뜨린, 인류의 책임을 덜어주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미세먼지와 기후변화, 인류세에 아직 ‘우리’가 제대로 응답한 것 같지는 않다. 어영부영, 혹은 은근슬쩍 지구의 미래를 어쩔 수 없는 영역에 남겨두는 것은 인간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 될 수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간과 지구의 미래를 같이 묶어내는 작업이다.

<강연실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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