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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대전에는 전화로 버스표를 예약할 수 있는 작은 정류소가 있다. 이 정류소에는 주로 공항으로 가는 버스가 정차하는데, 전화를 걸어 버스가 언제 있는지, 나의 비행기 스케줄에 맞추어 가려면 몇 시 버스가 적당한지, 혹시 고속도로 교통 상황이 나쁘지는 않을지 직원에게 물어보고 버스표를 예약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공항버스를 예약하려고 전화를 걸었다가 더 이상 전화 예약을 받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버스 정류소 직원에 따르면 이로써 국내에서 전화로 표를 예약할 수 있는 버스 정류소는 모두 사라졌다. 그는 그동안 이 정류소가 버스표를 판매하고 버스를 타는 곳 이상의 역할을 해 왔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대전에서 꽤 멀리 떨어진 무주나 공주에서 전화로 표를 예약하고 이곳에서 버스를 타기도 했고, 본인의 여정과는 무관한 이 정류소로 전화해 어디에서 언제 버스를 타야 목적지로 갈 수 있을지 묻기도 했단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앱을 이용한 온라인 예약이 일상이 된 요즘, 이 정류소는 이런 방식의 예약이 도통 어려운 사람들이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였던 것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버스 정류소 이야기는 주요 서비스가 고도로 디지털화된 미래도시를 상상하게끔 한다. 전화로 시외버스 표를 예매하던 사람들은 잘 살 수 있을까? 지난달 16일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와 국토교통부는 2021년 말 입주를 목표로 세종시 5-1지구와 부산시 에코델타시티를 국가시범도시로 지정하고 스마트시티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세종시 스마트시티 구상안에 따르면 스마트시티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움직임, 시민들의 행동들을 전부 데이터화해, 인공지능을 통해 분석하여 도시인들의 삶의 질과 행복을 높이는 맞춤형 예측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으로서의 도시”다.

스마트시티의 ‘스마트’한 성격은 도시 기반시설을 구성하는 기술의 속성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스마트시티의 필요조건은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기보다 도시의 물리적 환경을 구성하는 기술이다. 멋진 기술적 구상들로 가득 차 있는 스마트시티 구상안은 이를 잘 보여준다. 스마트시티의 혁신요소들은 가치, 서비스, 도시 설계, 기술 네 가지로 설명된다. 예를 들어 이동시간과 비용의 절감이라는 ‘가치’는 차량과 보행자 모두 정체가 없는 교통환경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실현되며, 이는 스마트 신호 시스템이나 스마트 횡단보도를 설치하고 도시 데이터 분석센터에서 인공지능으로 교통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기술적 요소들이 도시 곳곳에 배치되어 있을 때 가능해진다.

세종 스마트시티 구상안에 빠진 것이 있다면 이곳에 살게 될 사람들이다. 스마트시티에 사는 스마트 시민은 어떤 사람일까? 스마트 시민은 생물학적 몸과 자아, 그리고 데이터로 구성될 것이다. 자아 식별 기술과 보안 기술은 이 셋을 안전하게 엮어 준다. 스마트 시민이 온전한 ‘시민’으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데이터화된 자기 자신이다. 스마트시티의 시민들은 5G 와이파이망과 스마트앱을 사용해 대의민주주의를 실현시킬 것이다. 여론은 인터넷과 스마트폰, 데이터센터가 연결된 네트워크 속에서 모아질 것이다. 정치는 더 이상 질문하고, 대답하고, 토론하고, 설득하는 지난하고 피곤한 과정이 아니라 데이터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스마트시티의 이러한 정치적 이상은 중국에서 일부 실현되고 있다. 과학기자 크리스티나 라슨은 지난 20일 ‘MIT 테크놀로지 리뷰’에 실린 ‘데이터가 있는데 민주주의가 왜 필요한가?’라는 기사에서 디지털 기술과 통치를 정교하게 연결시키려는 중국 정부의 정책들을 다뤘다. 스마트시티는 이 중 하나다. 예를 들어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은 즉시 무단횡단 모습이 담긴 사진과 얼굴, 주민등록번호가 광장에 설치된 전광판을 통해 모두에게 보여진다. 무단횡단하는 사람의 행동을 데이터화하고 인공지능 안면인식 기술로 분석한 후 시민들의 개인식별 정보와 연결시켜 얻어낸 정보를 대중에 공개함으로써 처벌하는 것이다. 중국이 보여주는 ‘대화 대신 데이터’로 정치가 이루어지는 디지털시티는 유토피아보다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도시의 생활이 스마트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스마트시티의 시민은 통신비를 충분히 지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2017년 가계동향조사에 의하면 1인 가구 통신비 지출은 6만3000원이다. 이 금액은 같은 해 기준 최저 시급 6470원을 받는 1인 가구 구성원이 근로기준법에 따라 한 달 209시간을 일하고 받는 월급 135만2230원의 약 4.7%이다. 즉 한 달에 약 9.7시간의 노동을 오롯이 통신비로 지출해야 하는 셈이다. 4인 가구와 중위소득으로 기준을 바꿔 계산해 보아도 한 가구 소득의 4.8%가량이 통신비로 지출된다. 여기에 수십만원에서 100만원에 육박하는 스마트폰 단말기 비용까지 더해야 한다. 결국 스마트앱 활용 능력은 말할 것도 없이 ‘앱’을 사용할 조건을 갖추는 데에만 상당한 비용이 드는 것이다. 여러모로 스마트 시민이 되는 일은 만만치 않다.

당장 이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대표적인 사람들은 노인이다. 노인들은 스마트앱과 같은 디지털 기술 활용 능력도 약하지만, 이 기술을 사용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지불할 능력도 현저히 떨어진다. 2017년 보건사회연구소에 따르면, 소득을 통틀어 최저생계비 미만인 노인은 전체의 55.2%이다. 노인의 절반 이상이 절대적 빈곤상태인 것이다. 높은 노인 빈곤율이 유지된다면, 그리고 한국 사회가 지금처럼 빠르게 고령화된다면 인구의 상당수는 스마트 시민의 조건을 갖출 수 없을 것이다.

정부는 스마트시티 곳곳에 설치된 혁신적 기술이 시민들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당에는 유토피아가, 국민들에게는 디스토피아가 된 중국의 스마트시티는 다소 극단적 사례이기는 하지만, 기술이 약속한 행복이 특히 누구의 행복인지는 꼼꼼히 따져볼 문제다. 스마트시티 속 기술은 시민들이 디지털 앱 활용능력이나 통신비 지불능력처럼 스마트 시민의 조건을 갖추고 있을 때 비로소 잘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스마트시티는 ‘스마트’한 것이 아니라 ‘스튜핏’한 것일지도 모른다.

<강연실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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