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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2월 미술사학자 유홍준 교수는 추사 김정희의 삶과 예술을 그린 책 <완당평전>(학고재)을 출간했다. 마땅한 추사 연구의 입문서가 없는 상황에서 독자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런데 채 1년이 되지 않아 고서연구가 박철상씨가 ‘완당평전,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글을 발표, 책의 내용을 문제 삼았다. 박씨는 ‘완당’ 당호의 내력, 추사 편액과 주련에 대한 서체, 추사의 시구 번역 등 <완당평전>의 오류를 40여군데나 지적했다.

<완당평전>에 대한 젊은 연구자의 비판은 저명한 미술사학자로, 추사 연구가를 자처하는 유홍준 교수에게 뼈아픈 일이었다. 굴욕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유 교수는 박씨의 지적을 수용하고 그 책을 절판했다. 그러나 추사 연구의 끈은 놓지 않았다. 유 교수는 지난 4월 새롭게 쓴 <추사 김정희>를 내놓았다. 책의 말미에는 “박철상님의 오류에 대한 공개적인 서평은 귀한 지침이었다”고 적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유 교수의 신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산사순례>(창비·이하 <산사순례>)에서도 오류가 발견됐다. 이 책 ‘문경 봉암사’편에서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의 말을 인용하면서 ‘돌아가신 강우방 선생’이라고 쓴 것이다. 원로 미술사학자인 강우방 원장은 올해 77세로 현재 미술사학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창비 측은 “저자인 유홍준 교수와는 관계없이 편집자가 한 실수”라며 책을 회수했다고 밝혔다.

<산사순례>는 유 교수가 새롭게 쓴 저서는 아니다. 출판사가 우리 산사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밀리언셀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이하 <답사기>) 시리즈에서 산사 답사기만을 뽑은 것이다. 1993년 간행된 <답사기> 1권의 ‘문경 봉암사’편에는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 강우방 선생’이라고 되어 있다. 기존 콘텐츠를 재편집하는 과정에서 나온 실수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해서 유 교수의 책임이 면해지는 것은 아니다. 유 교수는 <산사순례>의 서문 ‘산사의 미학’을 새로 썼고, 표지에도 ‘유홍준 지음’이라고 내걸었다. 유 교수는 저자로서 이번 사건에 대해 책임 있게 해명해야 한다. 출판사 창비는 유명 인사의 명성에 기대어 기존 콘텐츠를 재탕, 삼탕하는 셀럽 마케팅을 재고해야 한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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