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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수산물시장에서 장을 보고 나서려는 참이었다. 바퀴가 고장난 카트는 자꾸 오른쪽으로 향하고, 문밖에 비는 무섭게 쏟아지고, 식사 때를 놓친 터라 마침 허기도 지고 해서, 그냥 시장 근처 분식집에 자리를 잡고 앉아버렸다. 꼬치어묵 국물이 좋은 걸 보니 여름이 가긴 간 모양. 폭염에 파리만 날리던 이 집도 슬슬 바빠지겠구나 생각하면서, 어디 브런치 카페에라도 온양 어묵 국물을 커피처럼 홀짝이며, 이쑤시개로 떡볶이 떡을 찍어먹고 있다 보니 옆자리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일부러 들을 생각은 없었지만, 일부러 안 듣기도 애매한 위치. 지금도 가슴이 벌렁벌렁, 아무리 해도 안되고, 골뱅이가 참, 치킨만 할 수도 없고, 그러니까 비밀은 말이죠. 조각난 말들을 조합하니 웃음이 나왔다. 씁쓸해졌고 결국 눈물이 조금 났다.

상황은 이렇다. 대략 60대 중후반쯤 되는 부부가 그보다 좀 젊은 남자 앞에 나란히 앉아 있다. 두 손을 모은 부부의 자세가 공손하기도 하고 절실해 보이기도 한다. 반면 의자 등받이에 팔을 걸치고 약간 비스듬하게 앉은 남자의 자세는 보다 여유 있고 조금은 으스대는 느낌까지 든다. 부부는 최근에 치킨집을 연 모양인데, 누군가에게 베테랑 치킨집 사장을 소개받아, 이것저것 조언을 듣고 있는 중. 떡볶이와 순대와 어묵을 대접하며. 다음은 내가 들은 그들의 대화 중 일부를 그대로 옮긴 것.

치킨만 튀기면 될 줄 알았는데, 그건 잘하겠는데, 누가 골뱅이라도 시키면 심장부터 벌렁거린다니까요. 자꾸 해보셔야 해요, 난 이제 누가 ‘골뱅이 하나요’ 하면 바로 물부터 올려요. 착착착이죠. 면 삶는 동안 다 끝나요, 썰고 무치고. 아! 일단 물부터, 그 생각을 못했네요. 익숙해지실 거예요, 자꾸 하다보면. 번데기는 어쩌죠? 도대체 맛이 안 나요. 다 비결이 있죠. 어떤 비결이오? 다시다 반 스푼, 정확하게 반 스푼, 더 넣어도 안돼요. 다시다는 어떤 거 쓰세요? 저는 C사의 다시다만 써요. 저기 D마트에 가면 대용량 D다시다도 있거든요? 저렴하죠. 그건 맛이 안 나요. 꼭 C사 걸로 쓰세요. 이따 같이 가면 알려드릴게요. 아까 또 뭐 사야 한다고 그랬죠? 앗, 기름종이. 그리고 그거 적어놓으셨죠? Y번데기. 꼭 그거 쓰세요. 한 통에 400원 절약이면 그게 얼마예요. C다시다로 끝납니다. 고맙습니다. 저희가 자꾸 시간을 뺏어서 어쩌죠? 아니에요. 다 물어보세요. 궁금한 건 뭐든.

골뱅이 주문에 심장부터 벌렁거린다는 저 여인. 어디 숨어버리고 싶다고 고백하는 저 여인을 어쩌려나. 나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주문은 밀려드는데 스테이크는 타고 있고, 수습한다고 종종거리다가 기름에 데고, 오븐 속 가지구이는 속절없이 쪼그라들고, 주문은 더 밀리고 머릿속이 하얘지고 발이 딱 굳어져버리던 순간. 그런데 골뱅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벌렁거린다는 그 말에 내 심장이 아려왔다. 구색을 맞추느라 넣기는 했으나, 먹어만 봤지 만들어본 적 없는 골뱅이와 번데기의 절실함. 그런데 거기에 무슨 비밀특제소스인 양 알려주는 다시다 반 스푼이라니. 번데기라니. 골뱅이 착착착이라니. 도대체 어쩌시려고 그 길에 들어서신 겁니까. 앞으로 어쩌시려고.

주택가에 처음 식당을 열었을 때 100m 남짓의 골목에는 다섯 개의 가게가 있었다. 2년 사이 그 길에 상가로 재건축한 주택이 일곱 채, 그곳에 스무 개 남짓의 새로운 가게가 들어섰다. 미용실, 꽃집, 사진관, 맥줏집, 와인집, 디저트집, 빵집 등 업종도 다양하게. 그중 한 가게는 술집이었다가 카페였다가 한동안 비어 있더니 얼마 전 유명 베트남 커피 체인점이 들어왔다. 스무 개 중 불과 3개월 만에 문을 닫은 가게가 세 곳. ‘임대문의’ 플래카드를 붙여놓은 채 그냥저냥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가게가 두 곳. 계약기간까지만 어찌 버티다가 다른 일을 도모하리라 속내를 밝힌 곳이 두 곳이다. 그리고 뭔지는 모르겠으나 새롭게 실내공사를 하고 있는 곳이 두 곳. 어찌보면 핫한 동네 골목의 당연한 모습이자, 그 이면의 음울한 측면이기도 하다.

자영업자 폐업률 수치를 두고 사상 최악이라느니, 입맛대로 인용하고 왜곡하는 언론이 어쩌니저쩌니, 정부의 경제대책 수정이 필요하느니, 근본적인 환경을 바꿔야 하느니 등의 이야기를 듣는다. 준비도 대책도 없이 무턱대고 자영업자의 길에 뛰어든 사람들 탓도 한다. 이 부부는 바로 그 사람들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특별히 음식에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서 배운 바도 없고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턱대고 가게부터 연, 얼마 지나지 않아 자영업자 폐업률에 숫자를 더할 것이 분명한 바로 그런 사람들. 어쩌다 그들이 치킨 골뱅이 번데기 호프집을 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편의점도 아니고 유명 프랜차이즈도 아니고 특별한 음식을 내놓는 고유한 음식점도 아닌, 적어도 20~30년 전부터 있어왔던 흔하고 빤한 호프집을 이 시대에 기어이.

내게 조언과 도움을 주었던 수많은 선배들이 그랬듯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접으라고 끼어들고 싶었다. 뭔가 아는 척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 나는 그럴 자격이 없었다. 그래도 나는 가게가 잘되어서 돈을 벌면 좋고, 안되어서 쫄딱 망하면 그 얘깃거리로 소설을 써서 좋으니, 어찌 되었든 꽃놀이패라 한번 가보시라 했던 내 친구의 말처럼, 아직은 젊고 물러설 자리도 있는데다, 지금도 이 이야기로 원고료를 받기도 하는 자가 아닌가. 어디서 감히. 골뱅이 주문에 심장이 벌렁거리고, 번데기 통조림 요리에 전전긍긍하는 저 나이든 여인의 선택을, 어쩌면 마지막 투자가 될지도 모를 선택에 무슨 토를 달 수 있겠는가. 다시다 반 스푼과 400원 싼 번데기 상품정보가 더 절실한 저들에게.

빗속을 뚫고 가게로 가는 길. 순대 접시를 남자 쪽으로 밀어주며 더 드시라 권하던, 그러면서도 뭔가 놓친 게 없는지 질문을 생각해내려 애를 쓰던 그 여인이 눈에 선했다. 번데기와 다시다 반 스푼을 운운하던 얘기를 듣다보니 문득 오래전 초등학교 앞에서 팔던 번데기 맛이 떠올랐다. 고깔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신문지와, 거기에 꾹꾹 눌러 담은 번데기. 종이가 터져 손바닥에 팔꿈치까지 흘러내리던 번데기 국물과, 그 국물 맛이 아쉬워 신문지를 쪽쪽 빨아보기도 했던 ‘찝찌르한’ 번데기의 맛. 심장이 찝찌르하다가, 찌르르 아파왔다. 이게 번데기 맛인가 싶었다.

<천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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