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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은 본질적으로 미래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위험은 “해로움이나 손실이 생길 우려가 있음. 또는 그런 상태”로 정의된다. 즉, 위험은 아직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사건과 관계가 깊은 개념이다. 따라서 위험 예측은 미래 예측의 일종이다. 앞으로 일어날 사건, 특히 해로움을 초래할 수 있는 사건을 예측하여 불확실성을 줄이고, 발생할 수 있는 손실을 미연에 방지하거나 그에 대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대사회에서 위험을 예측하는 임무는 특히 엔지니어의 것이 되었다. 엔지니어는 기술이라는 인공물을 개발하고, 만들고, 유지하고, 보수하는 사람으로서 그것과 관련된 위험을 관리하는 임무도 함께 지니게 된 것이다.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상황으로부터 인간이 만들어 낸, 그리고 인간이 의지하는 인공물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인간이 만든 인공물이 자연의 위험을 더욱 증폭시키거나, 그 자체로 자연에게, 혹은 사람에게 해를 입히기도 하기 때문에 엔지니어는 위험을 측정하고 예측하고 대비하는 일을 게을리할 수 없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러므로 엔지니어에게 미래의 위험은 현재의 행동을 결정하는 방향키 역할을 한다. 건축공학자는 지진의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을 예측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건축물의 모양과 자재, 공법을 선택하여 지진에도 견딜 수 있는 건물을 짓는다. 원자력공학자는 천재지변은 물론이고 기술자의 조작 실수부터 전쟁과 같이 인간이 초래한 상황에서 발전소 사고가 날 가능성을 예측하고, 사고를 방지하는 여러 기술적 방법들을 고안한다. 화재경보기나 소화전, 에어백이나 비상 전원 차단장치처럼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미리 예측하여, 그것을 빠르게 감지하고 대응할 수 있는 안전 기술을 개발하고 기술 시스템에 적용하는 것도 엔지니어의 몫이다.

엔지니어가 위험을 이야기할 때에는 확률의 언어를 사용한다. 공학에서 ‘위험’은 사건이 발생할 확률과 사건으로 인해 발생되는 해로운 결과의 곱으로 정의된다. 이렇게 정량화된 위험은 비교적 명확하게 표현되고, 서로 다른 위험 요인들을 비교하기 용이하다. 엔지니어의 목표는 어떤 기술 시스템이 지닌 위험을 0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감수하여 얻는 손해와 이득을 따져 허용 가능한 수준의 위험을 결정하고, 그 이하의 위험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것에 가깝다.

그러나 이러한 정량적 접근법은 몇 가지 중요한 한계점을 지니고 있다. 먼저 손해의 정량화가 가진 문제이다. 발생 가능한 사건의 종류를 빠짐없이 파악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일뿐더러, 그 사건의 결과 발생하는 손해의 크기를 정량적으로 환산하기는 쉽지 않다. 복잡한 기술시스템일수록 한 사건이 다른 사건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으므로, 하나의 사건에서 촉발된 사건이 연쇄 반응을 따라 얼마만큼의 손실을 가져올지 측정하는 일도 매우 어렵다. 지진으로 인한 손해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 돈이나 인명피해로 환산할 수 없는 종류의 손실은 어떻게 정당하게 정량화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에 모두가 만족할 만한 답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정의(正義)의 문제도 중요하다. 정량적인 위험 평가 방법은 위험으로 인해 발생하는 손해가 사회의 구성원들 사이에 공정하게 분배되는지 고려하지 않는다. 특히 사회적 약자가 더 자주, 더 큰 위험을 지고 있지는 않는지 살피는 일은 공학자의 일상적인 위험 예측 활동 밖의 내용이 될 가능성이 높다.

위험에 관해 책임 있는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미래의 엔지니어를 꿈꾸는 공학도들이 주로 배우는 공학윤리의 교과서는 엔지니어가 세 가지를 유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첫 번째로 위험은 평가하고 감지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증폭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두 번째는 ‘허용할 수 있는 위험’을 정하는 데에는 수치화된 확률 계산 외에도 여러 가지 접근 방법이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다. 마지막은 엔지니어와 대중, 규제기관은 위험에 대해 서로 다른 우선순위와 행동지침을 가지고 있고, 이것들은 때때로 충돌할 수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엔지니어 스스로 수행한 위험 예측에 대해 과도한 확신과 믿음을 경계하고, 엔지니어의 해결책을 고집하기보다는 다른 사회의 구성원들과 설득하고 협상하며 해결책을 함께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교과서에서 겸손한 엔지니어가 책임 있는 엔지니어라는 것을 배운다.

그러나 교과서의 내용이 현실에서 재현되는 것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에 대한 원자력 공학자들의 발언에서도 엔지니어의 자세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일본과 같은 지진과 쓰나미가 오더라도, 9·11과 같은 테러로 비행기가 원자로 건물을 내리쳐도, 북한 미사일이 공격해도, 운전원이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원자력 발전소는 안전하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지진이나 쓰나미, 비행기 사고, 운전원의 실수와 같이 구체적인 위험 시나리오에 대해 원자로의 노심이 녹는 사고를 충분히 방지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위험 평가 결과에 근거한 주장일 것이다. 그러나 공학윤리 교과서에서 강조한 책임 있는 엔지니어의 자세, 즉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위험 상황이 전개될 수 있는 가능성을 유념하는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원자력 발전소가 지난주 포항 지진에 결코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걱정을 “괴담”이라거나 “과학적 근거가 없는 선전, 선동”이라고 못박는 전문가들의 주장 또한 위험에 대해 책임 있는 엔지니어라면 고려해야 할 두 번째와 세 번째 항목과는 배치되는 태도다.

사람들은 또다시 ‘원자력 발전소는 안전한가?’를 묻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아마 앞으로도 지진이 나거나, 북한이 무력시위를 하거나, 원자력 발전소에 납품되는 불량 부품에 대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끊임없이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을 물을 것이다. 공학윤리를 배운 미래의 엔지니어들은 교과서의 내용을 실천에 옮길 수 있을까?

<강연실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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