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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지난 글에 이어 다시 한번 2030년을 거론하는 데에 거창한 이유는 없다. SF 작가인 제임스 호건이 <가니메데의 친절한 거인>을 집필했던 1978년에 2030년은 충분히 먼 미래였을 것이다. 하지만 2017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2030년은 흐릿하게나마 예측해 볼 수 있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미래다. 굳이 소설가의 상상력에 의존하지 않고 현재의 추세를 외삽(外揷)하는 것만으로도 그 대강의 모습을 스케치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지난 5월에 있었던 대선을 전후로 ‘제4차 산업혁명’ 열병을 앓고 있다. 각계각층에서 ‘제4차 산업혁명과 ○○○’라는 제목의 워크숍, 심포지엄, 강연회 등이 유행이다.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가져올 사회적 파급력에 대한 우려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스탠퍼드대학교는 2014년에 향후 100년간에 걸쳐 인공지능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복잡다단한 영향에 대해 탐구하겠다는 장기적인 목표를 내걸고 ‘인공지능 100년 연구’(AI100)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컴퓨터과학 전공자뿐 아니라 인지과학, 철학, 법학, 경영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5년에 한 번씩 인공지능의 현 단계를 분석하는 연구 패널을 구성하기로 하였다. 2016년 9월에 출간된 보고서 <2030년, 인공지능과 인간의 삶>은 AI100이 내놓은 첫 성과물이다(보고서 전문은 ai100.stanford.edu에서 볼 수 있다).‘한국에서는 왜 이런 일을 하지 않는가’라는 한탄을 늘어놓을 필요는 없다. 그 내용은 이미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연구 패널의 위원들은 인공지능의 파급력을 교통, 가정용 로봇, 보건의료, 교육, 저소득층 문제, 공공안전, 고용과 실업, 오락이라는 8개 분야로 나누어 설명한다. 우리도 지난 몇 년 사이에 수없이 들어본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을 이용한 가정용 기기의 상호연결, 의료용 로봇과 개인 모니터링 장치, 컴퓨터 알고리즘을 활용한 감시의 강화, 인공지능의 도입과 실업 문제 등이 그것이다. 50년, 100년 후의 미래와는 달리 15년 후의 미래는 현재 이미 나타나기 시작한 변화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AI100 보고서의 특징은 테크놀로지가 눈부시게 발전할 미래를 예측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패널 위원들은 인공지능 기술이 “갑작스럽고 예기치 않은 도약”을 통해서가 아니라 “현존하는 기술에 바탕을 두고 점진적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인류 역사상 일어난 기술 변화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일례로 산업혁명의 원형인 제1차 산업혁명은 증기기관과 방적기의 도입으로 폭발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짧게는 수십 년에서 길게는 한 세기에 걸쳐 서서히 일어났다. 인공지능 역시 도입 과정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기술적, 사회적, 법적, 윤리적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서서히 우리 삶을 변화시킬 것이다. 따라서 최근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는 산업 ‘혁명’ 담론이 비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인공지능의 확산은 이를 둘러싼 사회의 꼼꼼한 변화를 요구한다. 자율주행차의 확산과 그에 따라 예상되는 다양한 문제들은 이를 잘 보여준다. ‘자율주행차 전방에 갑자기 사람들이 나타났을 때 인공지능이 어떤 판단을 하게 해야 하는가’라는 널리 알려진 인공지능의 윤리적 딜레마가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자율주행차의 확산으로 세수가 줄어들 지방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교통사고의 감소로 기대수명이 유의미하게 늘었을 경우 증가할 의료보험 및 연금 부담은 어떻게 충당해야 하는가? 대규모 실업이 예상되는 택시·대리운전 기사들의 문제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테크놀로지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자원 배분의 문제를 야기하며, 이는 결국 정치적인 해결책을 요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들을 매끄럽게 해결하지 못한다면, 인공지능 기술은 사회적 역풍에 직면할 것이며 기술 발전의 속도 역시 심각하게 저하될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AI100 보고서에 제시된 여러 문제들은 이미 1980년대에 개인용 컴퓨터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1990년대에 유전자변형식품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나아가 2000년대에 나노기술을 둘러싼 논란 속에서 여러 차례 논의되었던 안건들과 동일한 구조를 갖고 있다. 한국에서도 2003년부터 과학기술기본법에 근거하여 새로운 ‘이머징 테크놀로지’가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 및 부작용”을 분석하는 기술영향평가를 실시하도록 되어 있고, 그동안 나노기술, 줄기세포, 기후변화 대응, 빅데이터, 3D 프린팅, 인공지능 등에 대한 보고서가 제출되어 있다. 소위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응은 바퀴를 새로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갖춰진 제도를 꼼꼼하게 운용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기존 제도를 효과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2030년, 인공지능과 인간의 삶>의 정책 권고는 이러한 면에서 독특함을 지니고 있다. 위원들이 제시한 가장 중요한 권고사항은 다음과 같다. “정부 조직 내에 인공지능에 대한 기술적 전문성을 축적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라. 효과적인 거버넌스를 위해서는 인공지능 기술, 정책 목표, 사회적 가치 사이의 상호작용을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보고서에는 “정부 조직”이라고 표현했지만, 통합적 이해와 분석 능력을 지닌 전문가의 필요성은 정부에만 강조될 문제가 아니다. 인공지능이 인류 복지 향상에 효과적으로 이용되기 위해서는 과학 및 공학 연구자와 함께, 그들이 만들어낸 성과를 사회적 가치와 조화시킬 수 있는 전 사회적 역량을 함께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최형섭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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