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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여중생들의 폭행 사건으로 미성년자의 범죄를 엄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진행 중인 소년법 폐지 청원에는 나흘 만에 25만명이 서명했다. 사사건건 반목하던 여야 의원들도 청소년 범죄 처벌 강화에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청소년 범죄가 저연령화, 흉포화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른정당 김세연 정책위의장은 “미성년자라도 특정 강력범죄에 대해서는 처벌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피해 학생과 그들 부모의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시민들이 받은 충격도 엄청나다. 그러나 청소년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가 과연 대안이 될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부산의 여중생들이 또래를 폭행해 피투성이로 만든 사건과 관련해 가해 학생들이 2개월 전에도 피해 여중생을 폭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여중생 2명이 피해자를 폭행하는 모습. 연합뉴스

여중생들의 범죄는 잔혹했다. 후배를 철골 등으로 때려 피투성이로 만든 뒤 인증샷을 찍어 친구들에게 돌렸다. 피해 학생은 머리와 입안이 찢어진 채 피를 흘리며 거리를 배회하다 행인의 신고로 겨우 병원에 이송됐다. 가해 학생들은 2개월 전에도 피해 학생을 폭행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또래 폭행 사건이 강릉에서도 있었다. 가해 여고생들은 폭행 장면을 영상통화로 생중계하고, 채팅방에 피해자 사진을 올려놓고 “못생겼다”며 조롱했다. 가해자들은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페이스북 스타가 되겠다”는 등의 황당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엽기적이었던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의 범인도 10대 소녀들이었다. 도대체 여중·여고생들이 왜 이런 끔찍한 행동을 저지른 것일까. 10대 시절을 폭력과 악몽 속에서 보낸 이들의 트라우마는 치유될 수 있을까.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다. 청소년들을 보면 기성세대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인다. 물질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기성사회, 나와 생각이 다르면 적으로 간주하고 추잡한 말과 글로 상대를 공격하는 어른들의 일상은 10대 소녀들의 범죄와 닮은꼴이다. 장애인과 동성연애자, 양심적 병역 거부자 같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에게 한국 사회의 강자와 다수자들이 그동안 어떻게 해왔는지 생각해보면 아이들에게 결코 책임을 떠넘길 수 없다. 아이들이 사회에서 보고 배운 폭력을 학교나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휘두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회는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에 대해서는 성인과 마찬가지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소년법 등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기성세대의 자기기만이다. 엄벌한다고 해서 청소년 범죄가 줄어든다는 보장이 없고, 오히려 사건의 본질을 감출 우려가 높다. 문제 청소년이 나타날 때마다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시키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리라 기대하는 것처럼 비현실적이고 무책임한 발상도 없을 것이다. 특히 민주당 이석현 의원이 대표 발의한 형법, 소년법,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강법) 등 3개 법안의 개정안은 충격적이다. 이 법안은 형법에서 처벌 대상인 ‘형사 미성년자’의 최저 연령을 현행 만 14세에서 12세로, 소년법에서 소년부 보호사건 심리 대상의 범위를 현행 만 10~14세에서 10~12세로 낮추는 것이 골자다. 이 법안에 따르면 초등학생도 사형시킬 수 있다. 사형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건 문재인 정부에서 여당이 이런 법안을 낸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사형제 찬반 문제를 떠나 폭력적 발상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한국의 10대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진 채 신음하고 있다. 살인적인 입시경쟁으로 장시간의 학습을 강요당하고 하루하루를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가정과 학교에서 버림받은 청소년들은 정처 없이 거리를 떠돌면서 이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 이른바 ‘청소년 문제’는 어른과 사회, 가정과 학교가 낳은 것이다. 정치권의 소년법 개정 추진은 기성세대가 반성과 성찰 없이 모든 책임을 청소년에게 떠넘기는 행위에 불과하다. 지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감옥과 형벌, 사형이 아니라 대화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왜 이렇게 됐는지 알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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