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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2일자 지면기사-

1965년 SF 작가 프랭크 허버트가 창조한 <듄>이라는 소설에는 모래 행성 아라키스에 살고 있는 프레멘이라는 종족이 등장한다. 북아프리카 사막 지역에 사는 베두인 종족을 모티프로 창조한 프레멘은 스틸슈트라는 특수복을 입고 아라키스의 혹독한 조건에 적응한다. 스틸슈트는 고효율 필터와 열교환 필라멘트를 여러 겹으로 쌓고, 체내에서 배출되는 땀, 소변, 침, 피와 같은 모든 종류의 수분을 모아 깨끗한 물로 정수해 재활용하는 옷이다. 영화판 <듄>을 촬영할 당시 스틸슈트를 입은 배우들은 아무 기능이 없는 고무옷을 입고 촬영하느라 고온의 사막에서 고생할 수밖에 없었다는 후문이다.

서울 기온이 39도까지 올라 111년 관측 사상 가장 높아 역대 최악의 폭염이 현실화됐다. 이미 열흘 넘게 열대야가 지속되고, 습도가 높고 자외선도 강해 더위체감지수 역시 ‘매우 위험’ 수준까지 올라갔다. 전문가들은 올해가 폭염이 가장 심했던 1994년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비록 올해 7월의 일평균 최고기온이 32.1도로 1994년보다 약 0.5도 낮지만 1994년과 달리 7월 말과 8월에 접어드는 시기에도 폭염이 심해지고 있기 때문에 우려가 크다. 선풍기와 에어컨 바람으로도 폭염을 물리치기 힘든 데다 계절이 바뀌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혹한이 찾아오면 프레멘이 장착한 스틸슈트 한 벌로 기후변화에 충분히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1994년 폭염으로 서울에서만 약 890명의 초과 사망자가 발생했고, 전국적으로는 4000명이 넘게 사망했다. 당시만 해도 폭염의 건강 영향에 대한 인식이 낮았고, 폭염에 대응하는 보건당국의 조치도 거의 없었던 관계로 폭염이라는 재난에 무방비로 당한 셈이었다. 올해 폭염으로 인한 건강 피해가 과연 1994년만큼 규모가 클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8월까지 폭염이 지속된다면 폭염에 취약한 노인 인구가 당시보다 증가했으므로 피해 규모가 1994년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반면 장마가 끝난 직후부터 폭염 예보가 발효됐고, 폭염에 대비한 국민행동요령도 확산됐으며, 무엇보다 이미 80%를 넘어선 에어컨 보급률을 감안하면 당시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세대 효과를 감안하면 1994년의 노인과 2018년의 노인이 같은 건강 상태의 노인이 아니므로 폭염이 노인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 폭염에 직접 노출되는 사람의 비율은 당시보다 낮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매년 여름 한반도에 다가오는 태풍이라는 기상 재난에도 이전과 달리 사망자와 부상자가 줄어든 데는 예보의 발전과 대비 태세의 확립이라는 요인이 크다.

환경 정의의 관점에서 폭염 환경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피해를 줄이는 일이 시급하다. 7월30일 현재 온열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가 27명으로 이 중 30~40대 사망자는 6명이지만 4명이 실외 작업 도중 사망한 것으로 보고됐다. 폭염 시 국민행동요령에 따르면 실외 작업장에서는 폭염안전수칙(물, 그늘, 휴식)을 항상 준수하고, 특히 취약시간(오후 2~5시)에는 ‘무더위 휴식시간제’를 적극 시행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열사병 예방 3대 기본수칙 지침에는 ‘폭염주의보(33도) 발령 시 시간당 10분씩, 폭염경보(35도) 발령 시 15분씩 휴식’하라고 안내하고 있다. 지침은 습도가 높은 한국 여름 기상 특성을 무시하고 단순 기온을 기준으로 제안하고 있는 데다, 휴식을 제공하라는 기준 기온이 높아 온열 질환 예방의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대부분 일용 노동자인 실외 작업 노동자에게 임금을 보장하지 않고 폭염 작업을 중단하라는 권고는 비현실적이다. 폭염이라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 유급 휴가를 인정하는 조치를 고용노동부는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건당 수수료 체제로 일하는 택배 노동자의 건강 보호를 위해 폭염 시 배달 제한과 요금 인상을 받아들여야 한다. 관급 공사인 경우 폭염 기간 노동시간 단축을 감안해 공사 기간 연장을 승인하고, 민간 공사에도 적용하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2065년 미래 도시는 도시의 팽창을 제한하고 도시 확장을 사회 인프라 개발과 발맞추기 위해 엄격히 도시화를 통제할 것이다. 사유보다는 공유 개념이 더 중요해지고 거대 도시보다 중간 규모 도시를 최대한 늘리기 위해 재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건설 현장에서도 제조업 공장 수준의 자동화가 진행되어 폭염을 걱정하지 않고 공사 기일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부득이하게 폭염에도 일해야 되는 노동자는 스틸슈트 수준의 작업복을 착용하고 근무하게 될 것이다. 24시간 사회를 탈피해 업무량이 줄어들고 꼭 필요한 배송은 드론과 같은 무인배송이 대체할 것이다.

사람이 사는 거주 지역과 사람이 살지 않는 비거주 지역으로 국토를 분류하여 걷고 싶은 도시를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 인구가 줄어든 지역에 사람들이 각자 흩어져 사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이런 지역에 사는 사람은 행정뿐만 아니라 의료와 같은 민간 서비스를 받기도 어렵다. 거주 지역은 사회 기반시설을 정비하고 행정 및 민간 서비스를 집중적으로 제공해 밀도를 높이고, 비거주 지역은 대규모 농장으로 개발하거나 자연 녹지로 확보해야 한다.

비거주 지역에서 거주 지역으로 이동하는 21세기 인클로저 운동이 성공하면 걷고 싶은 분위기의 거리가 만들어지고 소비가 늘어나며 건강에도 도움이 되어 의료비가 줄어드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문어발식 개발이 아닌 전략적인 국토 이용 계획과 관련 법률 정비가 필수적이다. 비거주 지역을 명확히 만든 미래 도시에서 폭염의 건강 피해는 매년 0명으로 기록하게 될 것이다.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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