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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직설]겨 묻은 개

opinionX 2018. 8. 6. 13:40

-2018년 8월 2일자 지면기사-

나는 겨 묻은 개가 똥 묻은 개를 나무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사회를 구성하는 다수는 ‘그놈이 그놈’이라고 치부하며 둘 다 혐오해버리는 것 같다. 아니, 오히려 전자에 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다. 이는 똥 묻은 개가 짖어대는 소리가 겨 묻은 개를 위축시키는 배경이 된다.

예를 들어, 긴 세월 동안 친일파·군부 잔당 등의 기득권층을 두둔하며 이익을 보장받고, 대지주·대기업 등 강자의 시선에서 기사를 써내고 광고를 유치하여 사내 정규직 평균 연봉 6000만~7000만원을 자랑하는 언론사는 내 관점에서 ‘똥 묻은 개’다. 돈이 많은 만큼 널리 의견을 뻗쳐 기득권 친화적인 사회 통념을 형성하는 데 크게 공헌한 이들.

그렇게 형성된 사회 통념에 기대어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은 손 안 대고 코 푸는 일이다.

그중 하나가 노조 활동가의 임금이 자신들보다 적을지라도 ‘귀족 노조’라 딱지 붙이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이가 노동자를 위하는 것이 위선이라며 손가락질하는 일이다. 오직 가난한 사람들이 노동 운동을 할 ‘자격’이 있다는 왜곡된 통념에 기댄 것이다. 비호하는 세력의 잘못은 축소해 보도하지만, 변화를 요구하는 이에게 작은 흠결이라도 발견되면 크게 키워 보도하며 “너는 얼마나 깨끗하냐”고 묻고 “너도 똑같다”고 대상을 주저앉히기도 한다. 진보는 깨끗해야 정당성을 얻는다는 통념을 이용한 것이다.

이 때문에 어떤 간절한 마음을 가진 이들은 흠결 없는 사람이 되고자 분투한다. 기득권에 대항하며 사회 변화를 주장하는 사람은 자격심사 대상이 되기 쉽고, 조금이라도 자격에 어긋나 보이는 소지가 있으면 꼬투리 잡혀 괴롭힘당하다가 끝내 고립돼버리기 쉬운 현실 때문에.

얼마 전 스스로 숨을 거둔 정치인의 현실 인식도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일생 동안 약자를 위해 활동하고, 권력의 횡포와 자본의 부패를 매섭게 감시하며 사회구조의 변혁을 꿈꿨던 그는, 그만큼 자신에게 엄격하고자 했다. 그러나 버겁게 이어지는 힘든 시기에 다가온 도움을 뿌리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 짐작한다. 훗날 그것이 실수였음을 알았을 때, 그 실수가 불러올 파장을 예견하며 얼마나 큰 회한에 휩싸였을까?

그때의 그가 혹시라도 자신의 지난 삶이 무가치했다고 느꼈을까봐 마음 아프다. 그의 유서의 “모든 허물은 제 탓이니 저를 벌하여 주시고, 정의당은 계속 아껴주시길 당부 드립니다”라는 대목에서는 끝내 눈물이 고였다. 자기 목숨보다 더 지키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에게는 숭고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 다 같지가 않아서, 그의 죽음을 조롱하고, 역시 정치인은 다 똑같다며 싸잡아 혐오하는 목소리 또한 성급히 등장했다. 길지 않은 애도의 기간, 침 뱉듯 말을 내던지지 않으면 못 견딜 정도로 그를 혐오하는 마음을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는 그 정도의 감정은 본인 권력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거나, 몇 조원의 공공자산을 사익으로 빼돌리거나, 남이 죽건 말건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이들에게나 느껴지던데….

재판장의 판사가 비례의 원칙을 기반에 두고 형량을 선고하듯, 여론재판장의 판관나리들 역시 사건을 면밀히 살피고 딱 잘못한 그만큼만 죄를 물었으면 좋겠다. 겨 묻은 이가 똥 덩어리보다 더 욕먹는 일은 좀 방지해 달라 이 말이다.

이를 위해 기득권이 형성한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더 좋은 일은 여론재판장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저 뒷짐 진 채 완전무결한 정치인을 기대하고, 실망하면 험한 말을 보태는 일의 반복은 말의 수위만을 높일 뿐이다.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은 채 그저 남의 행동을 평가만 하는 이들보다 직접 움직이는 시민들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고통 받는 이웃의 현장에 직접 가 보고, 일상의 모순을 개선할 제도를 연구하고, 마음 가는 활동가나 정치인에게 후원하는 등 각자 감당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러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사실 우리 대부분은 흠결 있는 존재라는 것을. 조금씩은 못난 우리가 함께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갔으면 한다. 세상에 변화를 요구할 수 있는 자격은 시민 모두에게 있다.

<최서윤 <불만의 품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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