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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시간, 급한 걸음을 옮기는데 손바닥만 한 사무실 화단에 탁 걸리는 게 있다. 하늘에서 추락한 구름일 리는 없겠고 웬 눈뭉치인가 싶었다. 우수 경칩을 지난 지가 언제인가. 눈에게 눈이 깜빡 속았다. 마스크를 고쳐 쓰고 다시 보니 하얀 꽃이다. 그간 내 몰랐을 뿐 오늘 갑자기 핀 건 아니었다. 벌써 뭉개지는 것도 있으니 세상 구경한 지 여러 날 되는 미선나무의 꽃송이들. 대견한 미선나무 꽃잎에 무작스럽게 코를 들이대니 작년 이맘때가 떠올랐다.

이름에서 벌써 우람한 느티나무를 품고 있는 괴산은 과연 나무의 고장다웠다. 모텔의 어두컴컴한 복도는 물론 식당의 자투리땅마다 미선나무가 있어 은은한 향을 풍겼다. 중학교 어느 교과서에서 배운 이래 조금 특별하게 생각했던 미선나무. 열매가 부채 모양을 닮아서 유래한 저 미선이라는 이름은 나무를 지나 사람으로까지 쉽게 연결된다. 축제가 벌어지는 현장에서는 이름이 미선인 모든 분들께 미선나무 묘목을 선물하였다. 미선씨랑 동행할걸, 여운을 삼키며 어린 묘목을 업고 와 화분에 심었다. 미선나무에 얽힌 다소 싱거운 이야기를 어느 술자리에서 했더니 강화도에서 나무와 함께 나무 속에서 나무 같은 생활을 가꾸는 분이 선뜻 마음을 내주셨다. 우리집 정원의 미선이 하나 시집보내 드릴게요. 

무언가 큰 위로가 필요한 이 시절에 눈을 깜짝 놀래키면서 나에게 사정없이 달려든 게 바로 강화도 출신의 저 미선나무였다. 잠시 소홀했던 사무실의 화분도 확인해 보았다. 괴산의 어린 미선도 키가 훌쩍 자라 통통해진 겨드랑이마다 잎을 꼬박꼬박 내놓고 있다. 겨울을 이겨낸 새 가지를 만져보면 나무젓가락처럼 네모진 특징이 뚜렷하다. 내년에는 꽃도 피울 것이란 즐거운 예감이다.

어수선한 경자년의 봄. 꽃은 당장의 치료약은 아니겠지만 길게 보면 보약 이상이다. 괴산댁과 강화댁을 오가는 벌이라도 되는 양 나는 화단과 화분을 분주히 오르내리며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미선나무 곁에서 미선씨와 함께! 물푸레나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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