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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매미 울음소리가 그쳤다. 그러더니 날이 서늘해지고 바람이 분다. 지독한 여름 더위가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지난여름은 몸이 힘들어 쉬는 날이 많았다. 돌이켜보면 올여름을 나기가 무척 힘이 들었던 것 중의 하나는 더운 날씨뿐만 아니라 이 나라 정치소식이었다. 그것을 듣자면 울화가 치밀고 우울증이 마냥 심해지는 기분이어서 견디기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정치인들의 말을 듣기가 힘들었다. 소통되지 못하는 말들이 어지럽게 부유하고 내용 없는 말, 수사에 불과한 말, 억측과 궤변이 줄을 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전달되고 증폭되고 다시 옮겨지는 방송과 신문의 행태도 놀랍기만 했다. 대통령을 비롯해 고위공직자나 국회의원, 그리고 방송에 등장하는 온갖 평론가라는 이들의 말은 상당 부분 그것이 과연 어떤 사실에 근거해서 나온 말인지,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허황되고 거짓된 말들의 요란한 소음이 이 나라를 죄다 뒤덮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새삼 교육의 부재를 절감한다. 올바로 생각하고 그에 근거해 정확하게 말하는 방법, 그리고 그 말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삶의 구체성과 진실성을 반영하는 거울이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 두렵다. 이는 정치에만 국한되지 않고 우리 삶 모든 곳에서 반복된다. 말에 대한 사실 여부와 진실의 정도가 논의되지 않고, 그 말의 내용에 대한 가치판단이 부재한 상황에서 내용과는 무관한 수사나 공허한 개념어들이 춤을 추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우리에게 말은, 글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것은 그저 수사에 불과하고 요식행위에 해당한다. 진실을 담고 사실에 근거하고 말하는 이의 세계관, 가치, 믿음을 반영하는 그 무엇이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고 글을 쓰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림 그리는 이들 또한 자신의 그림에 대해 언어와 문자를 빌려 설명한다. 그림을 그리지만 결국 글과 말도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읽을 때마다 대부분 판독이 불가능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작가가 직접 자기 작업을 설명하는 자리에서도 마찬가지다. 미술관 전시 관람에서 도슨트들이 해당 작품을 관객들에게 설명하는 자리에서 우연찮게 그 설명을 엿듣고 있자면 과연 그 말과 저 작품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작품을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가능한 한 그것을 정확하게 간결하게 전달하려는 노력이 너무 아쉬운 것이다.
그런가 하면 케이블TV에서 방영하는 작가 아틀리에 탐방프로그램을 볼 때도 있는데 이때 작업실을 방문하는 대담자와 작가가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으면 이게 한국어인지 외계어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작가는 무슨 도인이나 신선처럼 자기 작품을 설명하고 있고 대담자는 감탄사와 놀라움만을 쏟아낼 뿐이다. 자신의 작업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동양정신을 구현한 작업”, “무극에서 무극으로 가는 여정”, “수신의 과정” 등으로 장황하게 설명하고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마치 대단한 사상가나 도사처럼 말하고 있는 모습, 그 허위의식과 말의 가벼움과 공허함에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작가들이 자기 작품을 과도한 수사에 의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설명하고 있는 경우를 본 적이 거의 없다. 상당수 작가들은 예술가란 고매한 사상과 철학으로 무장한 이가 되어야 하고 그런 것으로 포장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는 강박증 환자들 같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거나 의미를 부여할 때, 또는 방송이나 언론에서 미술작품을 설명하거나 전시를 소개하는 말과 글 역시 마찬가지다. 한결같은 수사와 공허한 말투, 똑같은 문장의 반복이다. 그와 같은 말들은 미술작품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개별성, 작품의 질에 대한 논의나 의미에 대해 어떠한 것도 전해주지 않는다. 그것들에 대해서는 오로지 침묵한다.
그러니 생각해보면 이 나라 정치판이나 미술판이나 공허한 수사와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말들이 앞서면서 내용을 속이거나 감싸고 있음을 본다. 새삼 정확한 말의 소통을 꿈꿔본다. 그것은 단지 말의 차원만이 아니라 그에 걸맞은 내용의 확보를 위해서도 불가피한 일이기 때문이다.
박영택 경기대 예술학과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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