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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이하 펜타포트)이 열렸다. 열한번째 행사였다. 2006년부터 한 해도 빠짐없이 이 페스티벌을 다녔다. 모든 라인업이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이 페스티벌만은 꼭 가야 한다는 당위 같은 게 언제부턴가 있었다. 의리라 불러도 좋다. 1999년의 기록적 폭우로 하루 만에 취소된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 이후, 수년간 ‘이 땅에서 록 페스티벌은 안된다’는 자조 같은 게 있었다. 이를 깨부순 첫번째 사례가 펜타포트였다. 2006년 3일간의 행사를 ‘완수’한 후 페스티벌은 조금씩 한국 대중문화 산업에 지분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거품도 잠시나마 있었지만 어쨌든 이제 한국은 최소한 매달 한 두 개의 음악 페스티벌이 열리는 나라가 됐다. 그 시발점 중의 하나이자 중요한 분기점이 된 게 펜타포트다. 그러니 음악 애호가로서, 그리고 록 페스티벌을 열망했던 한때의 젊은이로서 펜타포트에 의리 비슷한 감정을 갖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14일 오후 인천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불꽃놀이가 진행되고 있다. 인천시 제공 = 연합뉴스

이번 펜타포트에서 오랜만에 마주친 친구들이 있었다. 한동안 페스티벌이나 공연장에서 보이지 않았던 이들이었다. 반갑게 안부를 물었다. 대답은 하나같았다. 누군가의 아빠나 엄마가 되어 있었다. 결혼과 출산, 육아라는 인생의 단계를 거쳐 오랜만에 거대한 무대 앞으로, 너른 잔디밭으로 놀러 온 것이다. 아이를 데려온 이도 있었고, 아이 사진을 보여주는 이도 있었다. 펜타포트에서 아이 이야기를 꺼내는 친구들은,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친구들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공연장과 술집 등 홍대앞이 보다 음악적 지역이었던 시절의 공간에서 놀았던 이들이다. 누군가가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된다는 생각 따위 없이 그저 놀았다. 철들기 싫다며 놀았다. 세월은 모두에게 흐르고 인간관계에도 유통 기한은 존재하는 법. 누군가는 남고, 누군가는 떠나갔다. 남은 이들과의 세월은 자연스레 흘렀다. 청첩장을 받고 사진을 찍었다. 출산 소식을 듣고 돌잔치에도 참가했다. 어색하지 않았다. 떠나간 이들과의 유통 기한은 종종 끊겼다. 남은 이들끼리의 대화에 등장하는 빈도도 줄어들더니, 결국 사라지곤 했다.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멀어져 자신의 세계를 살아온 이들과 우리의 세계에서 다시 만났다. 어색하지만 아득했다. 초등학교 동창을 만난 느낌이었달까. 그중 압권은 한 부부를 만났을 때였다. “형, 기억 안 나요? 우리가 2006년 펜타포트에서 만나서 사귀게 된 거잖아요.” 물론 기억할 리가 없었지만 “아, 그랬지”하며 얼버무렸다. 내 기억은 당시에 남자가 여자를 슬쩍 마음에 두고 있는 정도였는데 아무튼, 중요한 건 그들이 다섯살 된 아들과 함께였다는 거였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문장 하나가 감정으로 박혔다. 하나의 시대가 완전히 지나갔구나 하는, 일종의 생경한 탄식이.

이번 펜타포트에 참여한 해외의 동시대 밴드들 중 록의 고전을 리메이크한 팀들이 있었다. 패닉 앳 더 디스코가 부른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는 90년대에도 이미 고전이었으니 그렇다 치자. 하지만 그룹 러브가 비스티 보이스의 ‘사보타지’를, 낫싱 벗 띠브스가 픽시스의 ‘웨어 이즈 마이 마인드’를 부를 때는 90년대 명곡들이 이제 클래식의 영역으로 넘어갔음에 얄궂은 기분이 들었다. 두번째 날의 헤드라이너이자, 90년대의 영웅이었던 위저는 아예 작심하고 초·중기의 히트곡들을 중심으로 연주했다. 얼마나 명곡이 많은지 메들리로 묶어서 부를 정도였다. 옛 친구들의 얼굴을 가장 많이 본 시간도 그때였다. 첫번째 펜타포트에서 썸을 탔는지 사귀게 됐는지 어쨌든 지금은 부부가 된 커플도 아이의 손을 꼭 붙잡고 거기 있었다.

열한번째 펜타포트에서도 썸 또는 커플은 탄생했을 것이다. 그들 중 누군가는 부부의 연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음악에서 멀어져 있을 것이다. 그들이 아이를 데리고 페스티벌에 찾아올 여유를 허락받게 될 때 송도에서 여전히 펜타포트의 커다란 무대가 기다리고 있을까. 한 세대가 또 다른 세대에게 바통을 넘겨 줌으로써 역사의 탑은 쌓인다. 지난 펜타포트의 세월이 그 주춧돌이 되길, 앞으로의 시간이 기둥이 되길 바란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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