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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지방선거가 100일도 남지 않았다. 그런데 풀뿌리 지방의회인 기초지방의회 선거구는 아직도 획정되지 않았다. 국회가 공직선거법 개정안 처리를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뒤늦게 국회가 5일 본회의를 통해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한다고 하지만, 본래 작년 12월13일까지 끝났어야 하는 기초지방의원 선거구 획정은 늦어도 너무 늦어졌다.
더더욱 우려되는 것은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기초지방의원 선거구 획정을 기존대로 졸속처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기초지방의원 선거구는 이재명 성남시장의 표현에 따르면 ‘살당공락’의 결과를 초래하는 적폐 중의 적폐이다. 직접 지방행정을 8년간 운영해 본 이재명 시장이 오죽하면, “살인자도 거대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고, 공자님도 공천 못 받으면 떨어진다”는 얘기를 하겠는가?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D-100일을 하루 앞둔 4일 경기 수원 영통구 직녀광장에서 경기도선관위 직원들이 6·13 지방선거를 홍보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 기초지방의원 선거제도는 흔히 중선거구제라고 불린다. 하나의 지역선거구에서 2명, 3명, 4명을 뽑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 2인선거구가 70%를 차지하고, 3인선거구는 얼마 되지 않으며, 4인선거구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하나의 지역선거구에서 1등, 2등이 당선되는 2인선거구는 1등만 당선되는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 못지않은 문제를 낳는다. 2개의 거대정당이 1석씩 나눠 먹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남이나 호남에서는 그 지역의 정치를 지배하는 정당이 2석 모두 차지하기도 한다. 그래서 소수정당과 정치신인의 진입을 쉽게 한다는 중선거구제 도입 취지와는 전혀 거리가 먼 결과가 초래된다.
거대 양당의 나눠 먹기가 가장 심한 곳은 서울이다. 지방선거에서는 서울시장-구청장-시의원-구의원을 한꺼번에 투표하기 때문에 정당기호에 따라 줄투표를 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1번, 2번 기호를 받는 정당의 후보로 공천만 받으면 2인선거구에서는 당선이 거의 보장된다. 그래서 소수정당이나 무소속 후보자들은 2인선거구에서 아예 후보등록 자체를 포기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 결과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서울지역의 지역구 구의원 당선자 중에서 무투표 당선자가 22명이나 나왔다. 비례대표 무투표 당선자 4명을 합치면 무려 26명의 구의원이 서울에서만 무투표당선된 것이다. 서울 은평구의 경우 총 17명의 지역구 구의원 당선자 중에서 6명이 무투표 당선됐다. 2인선거구에서 거대 양당이 1명씩만 공천하고, 다른 정당과 무소속 후보들은 등록 자체를 포기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무투표 당선이 아닌 지역이라도 특별하게 다르지 않다. 2인선거구에서는 2개의 거대정당 외에 다른 후보들이 나오더라도 현실적으로 당선되기 어렵다. 20%가 넘는 득표를 한 소수정당 후보, 무소속 청년후보도 낙선한다. 결국 1등, 2등은 거대정당의 공천을 받은 후보가 차지하기 마련이다. 2014년 서울시 구의원 선거에서 거대정당 소속이 아닌 당선자는 419명 중에서 4명에 불과했다. 무소속으로 당선된 사람이 3명, 노동당 소속이 1명이었는데 모두가 2인선거구가 아닌 3인선거구였다.
그래서 올해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2인선거구를 줄이고, 4인선거구를 대폭 확대할 것을 요구해 왔다. 전문가들도 같은 의견들을 제시해 왔다. 다행스럽게도 학계, 언론계, 법조계, 시민단체, 시의회, 선거관리위원회의 추천으로 구성된 서울시 선거구획정위원회는 작년 11월 2인선거구를 대폭 줄이고, 4인선거구를 35개 이상으로 확대하는 구의원 선거구 개혁방안을 내놓았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은 물론이고 더불어민주당이 반대하고 나섰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힘으로 막으라’는 얘기를 하는가 하면, 민주당 서울시당도 기득권 유지를 위해 개혁안에 반대의견을 내놓았다. 그래서 서울시 선거구획정위원회의 개혁안이 위태로운 상황이 되었다. 선거구획정위원회에서 안을 만들어도 서울시의회에서 최종통과가 되어야 하는데, 서울시의회의 다수당인 민주당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시 선거구획정위원회의 안이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눈앞의 작은 이익 때문에 2인선거구에 매달리는 것은 정치개혁을 파탄으로 이끄는 선택이 될 수 있다. 국회에서는 한국당이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반대해서 선거법 개혁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그리고 민주당은 한국당의 반(反)개혁적 태도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런데 기초지방의원 선거구 획정과 관련해서는 민주당이 한국당과 같은 입장을 취한다면, 어떻게 시민들이 민주당의 진정성을 믿을 수 있을까? 그리고 민주당이 앞으로 어떻게 다른 야당들의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겠는가? 기초지방의원 선거에서 2인선거구는 다양한 정당 간의 경쟁구조를 없애고, 거대정당 공천이 곧 당선되는 구조를 만든다. 이것은 공천비리나 공천을 둘러싼 비민주적인 행태의 원인이기도 하다. 이런 식의 나눠 먹기 구조는 이번에 반드시 혁파해야 한다.
시간이 얼마 없는 상황이다. 5일 국회 본회의에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3월 중순까지 기초지방의원 선거구 획정이 마무리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더 이상 민주당이 소탐대실하지 않기를 바란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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