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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은 6·10민주항쟁 31주년이다. 30주년이었던 올해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를 평화적으로 극복하고 대통령을 교체했다. 31주년에는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국가적인 숙제를 마무리해야 한다.

마침 31주년 직후인 내년 6월13일에는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이 지방선거와 함께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이 공약이 현실로 된다면, 문 대통령은 30년 동안 손보지 못한 정치시스템을 바꾼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문제는 그동안 국회논의를 지켜봤지만 해법이 안 보인다는 데 있다. 국회 개헌특위는 합의점을 찾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게다가 최근 들어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하자던 자신의 공약까지 뒤집었다.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 자체를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최소한의 정치적 양식도 없는 행태이지만, 116석의 의석을 가진 자유한국당이 조직적으로 반대하면 개헌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재적 국회의원 3분의 2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편 국회에는 정치개혁특위도 구성되어 있다. 개헌과 함께 선거제도 개혁을 해내기 위해서다. 문재인 대통령도 ‘개헌과 함께 국민의 뜻이 정확하게 반영되는 선거제도로 개혁해야 한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각 정당의 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이 핵심이다. 문 대통령은 ‘선거제도 개혁이 되면 권력구조 부분은 양보할 수도 있다’는 뜻을 밝힐 만큼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그런데 국회 정치개혁특위도 합의점을 찾을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역시 자유한국당이 반대하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개헌도 물 건너가고 선거제도 개혁도 물 건너갈 상황이다.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은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 논의를 국회에 맡겨 왔다. 국회를 존중하는 적절한 태도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국회에서는 합의가 안된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이대로 아무것도 안되는 상황을 방치할 것인가? 이미 국회에는 충분한 시간을 줬다. 개헌특위는 올해 1년 동안 활동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정치개혁특위도 지난 6개월 동안 지지부진한 논의만 계속하고 있다.

그렇다면 더 이상 국회에만 맡겨놓을 것은 아니다. 헌법에 의하면, 개헌안은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가 발의할 수도 있고, 대통령이 발의할 수도 있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 발의권을 행사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봐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이 발의한다면, 개헌안에는 핵심쟁점인 권력구조(정부형태)와 선거제도 개혁에 관한 내용을 담아야 한다. 기본권 강화와 직접민주주의 확대, 지방분권은 꼭 필요하지만, 이 내용만 담은 개헌안은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없다. 야당들은 핵심쟁점인 권력구조(정부형태) 문제를 개헌안에 담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것을 피해가서는 안된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의 소신인 선거제도 개혁도 개헌안에 담아야 한다. 핀란드, 오스트리아 같은 국가는 헌법에 ‘정당득표율에 비례해서 의석을 배분하는 비례성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헌법에 명시되면, 국회가 법개정을 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수밖에 없다.

물론 대통령이 곧바로 개헌안을 발의하라는 것은 아니다. 일종의 입법예고 같은 것을 하고 공론화하는 과정을 밟으면 된다. 쟁점인 권력구조(정부형태)와 관련해서도 2가지 안 정도로 압축해서 의견을 수렴하면 된다.

어차피 대한민국은 대통령직선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국가이다. 그리고 대통령 임기를 몇 년으로 하느냐, 중임제냐 아니냐는 핵심이 아니다. 실질적인 쟁점은 ‘국무총리 선임방법을 어떻게 할 것인지?’이다. 지금처럼 국회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할 것인지, 아니면 책임총리를 제도화하는 차원에서 국회가 총리후보를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할 것인지를 놓고 토론하면 된다.

총리추천권을 국회에 주려면 국회를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서 선거제도의 비례성 원칙도 헌법에 명시해야 한다. 이런 방안을 대통령이 제안해서 자유한국당 내부의 잠재적 개헌 찬성파들을 논의에 끌어들여야 한다.

자유한국당 내부에도 개헌을 바라는 국회의원들이 있다. 그리고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당연히 국민들의 의견도 수렴해야 한다. 내년 초에 대통령의 의지를 담은 개헌발의 예고안을 공개하고, 2개월 정도 집중적인 의견수렴을 하면 된다. 그렇게 해서 3월에 최종적인 개헌안을 발의하면 국민들의 지지도 받을 수 있고, 통과 가능성도 높일 수 있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낡고 문제 많은 정치시스템을 고치지 못하면, 대한민국 정치는 국민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정치로 바뀌기 어렵다. 그래서 어렵더라도 문재인 대통령이 결단을 하길 바란다. 국민들이 지지할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국민 70~80% 이상이 개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기본권 강화, 직접민주주의 확대는 촛불시민들의 바람이기도 했다. 지난 10월 국회의장실에서 의뢰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2.9%가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찬성했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이런 여론을 받아들여 개헌안을 발의하는 것은 헌법상 대통령의 책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결단을 기대한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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