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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12일 대구·경북지역 일간지인 매일신문은 사설을 통해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매일신문은 “홍 대표는 대구에서 정치를 하고 싶다는 뜻을 누차 피력한 바 있는데, 지방분권 개헌 열망에 찬물을 계속 끼얹는다면 그 꿈 일찌감치 접기를 권고한다”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이 사설은 개헌을 둘러싼 현재의 논의지형을 잘 보여준다. 지금 자유한국당 소속 권영진 대구시장은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을 지지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 홍준표 대표가 원색적인 비난을 하며 제동을 걸고 있고, 그것이 대구·경북지역에서도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최근 자유한국당이 국회 개헌특위의 자문위원회 보고서 중 일부 내용을 문제 삼고 있는 것도 이런 비판 여론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개헌을 색깔논쟁으로 끌고 가서라도 비판적인 여론을 잠재워보려는 것이다. 그러나 홍준표 대표가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국민투표를 하겠다’는 자신의 대선공약을 뒤집은 것은 누가 봐도 명분이 없는 일이다. 대한민국 주권자들은 보수-진보를 떠나서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

매일신문은 1월2일에도 사설을 통해 ‘국가의 미래가 달린 지방분권개헌 이슈를 당리당략과 선거 유불리로 접근하고, 정치적 소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특정 정치인에 대해 혐오를 드러내는 태도는 온당치 않다”고 홍준표 대표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를 하라’는 것은 보수-진보를 떠난 요구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더라도, 개헌의 필요성에 대한 동의가 70%를 훨씬 넘는다.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에 대해서도 지역에 관계없이 찬성여론이 높다.

부산일보 신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방선거 동시 개헌 국민투표’에 대한 찬성 여론이 부산·경남지역에서 77%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매일신문이 작년 12월 말에 대구·경북지역 여론을 조사한 바에 따르더라도, 이 지역의 찬성률이 61.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자료들을 줄줄이 언급하는 이유는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 발의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다. 더 이상 국회논의를 기다리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국회가 작년 말에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해서 올해 6월까지 활동하기로 했지만, 이 특위에서 개헌안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작년 1년 동안 국회 개헌특위는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게다가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에 소극적인 자유한국당 측이 새로운 특위 위원장을 맡기로 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런 특위에 무슨 기대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국민들 다수가 바라는 개헌과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대통령이 나서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헌법이 대통령에게도 개헌안 발의권을 준 이유는, 이처럼 국회가 제 역할을 못하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 개헌안 발의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대통령의 직무를 소홀히 하는 셈이 된다.

물론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는 것은 많은 정치적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벌써부터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개헌 반대’와 같은 수준 낮은 정치공세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정치공세가 쉽게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앞서 언급한 근거들을 봐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개헌논의가 본격화되면, 스스로의 대선공약을 어기고 개헌을 사실상 방해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은 더욱 궁색한 처지가 될 것이다. 그들이 ‘색깔 덧씌우기’ 등 여러 시도를 하겠지만, 현명한 대한민국의 주권자들은 쉽게 말려들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 발의를 본격 추진해야 한다.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1월부터 본격 추진을 할 필요가 있다. 다만 시작부터 대통령이 개헌의 내용에 대해 언급할 필요는 없다. 대통령이 발의할 개헌안의 내용은 여·야당의 의견도 충분히 수렴하고, 국민들의 의견도 수렴하여 최종 확정하겠다고 하면 된다. 그러면 반대할 명분이 없다.

개헌의 내용과 관련해서는 포괄적이고 제한 없는 논의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기본권 강화와 지방분권 외에도, 직접민주주의 확대, 민심을 그대로 반영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의 선거제도 개혁 같은 내용이 논의의 주된 대상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또한 가장 논란이 되는 권력구조(정부형태)와 관련해서도 공개적인 토론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나갈 필요가 있다. 어차피 개헌과정은 다양한 의견들이 합의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아마도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할 것인지와 관련해서 가장 고민되는 것은 국회 통과 가능성일 것이다. 국회의원 3분의 2가 동의해야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국민투표에 부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헌안의 국회 통과 가능성을 처음부터 비관할 필요는 없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개헌은 이미 보수-진보의 프레임을 넘어서고 있다. 보수든 진보든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국가운영시스템을 만드는 것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도 대통령이 진정성 있게 개헌을 추진하겠다면, 대한민국의 주권자들이 지지하고 개헌논의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개헌안을 논의하는 과정은 민주주의에 관한 거대한 집단학습과 토론의 과정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자들에게는 그런 역량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 논의의 물꼬를 틔워주기를 기대한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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