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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사회사상가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던 역사 인식을 꼽으라면 사회진화론을 들 수 있다. 사회가 발전하는 길은 하나밖에 없고, 이 길에는 몇 개의 단계가 있으며, 서로 다른 사회들은 그 정해진 길을 빨리 가느냐 늦게 가느냐의 속도 차이밖에 없다는 사고방식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는 카를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이다. 모든 사회는 정해진 단계들을 거쳐 봉건제와 자본주의를 무너뜨리고 공산주의를 향해 나아간다. <자본론>의 서문에서 마르크스는 독일의 노동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너를 두고 하는 말이다!” 속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조만간 독일도 정해진 길을 따라 영국과 똑같아질 것이라는 예언이다.
단계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정해진 단계를 통해 정해진 길을 간다는 사고방식은 마르크스 말고도 폭넓게 공유되어 있었다. 오귀스트 콩트는 1822년에 ‘인류 진화의 3단계 법칙’을 내놓았다. 그에 따르면 모든 사회는 신학적 단계에서 형이상학적 단계를 거쳐 실증적 단계로 나아간다. 허버트 스펜서는 1870년대에 군사형 사회에서 산업형 사회로의 진화라는 역사관을 내놓았고 이것은 대중의 열정적인 환호를 받았다. 에밀 뒤르켐은 1893년 박사학위 논문에서 세상은 기계적 연대의 사회로부터 유기적 연대의 사회로 진화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의 주장도 역시 대중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사회진화론은 20세기 초반부터 비판받기 시작하다가 2차 대전 이후에는 완전히 폐기처분되었다. 지나친 일반화, 생물학적 진화론에 대한 오해, 목적론적 역사관 등 학문적 오류는 물론이고 ‘더 진화한’ 제국이 ‘덜 진화한’ 식민지를 병합하고 계몽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으로 제국주의 팽창을 옹호하는 논리로도 은근슬쩍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21세기 한국 정치에는 아직 사회진화론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주로 진보정치의 영역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후보 수락 연설을 보자. 그는 “이번 대선은 부패 기득권과의 최후 대첩” “미래와 과거의 대결, 민생 개혁 세력과 구태 기득권 카르텔의 대결” “어두운 과거로 회귀할 것인가, 희망의 새 나라로 출발할 것인가”의 문제로 현재의 의미를 규정하였다. 송영길 대표의 언급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다시 한번 역사가 거꾸로 갈 것이냐, 앞으로 전진해 갈 것이냐” “문재인 정부를 발전적으로 계승해 전진해 갈 것이냐, 다시 주술의 시대, 무속의 시대, 권력을 사유화하는 시대로 후진할 것이냐의 중대 갈림길”이라고 주장했다. 집권당의 대선 후보와 당대표는 우리가 정해진 발전단계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갈지 아니면 뒤로 물러날지를 결정하는 순간이라고 현재의 역사를 설명한다.
진보 진영에 단계론이 있다면 보수 진영에는 갈림길론이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대선 주자로 나서기 위해 총장직을 사퇴하면서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주장했다. 내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자유’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는 그냥 ‘민주주의’는 결국 사회주의나 다를 바 없다는 인식, 더 나아가 현 정부는 결국 사회주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메시지도 숨겨져 있다. 최근 윤 전 총장과 지지율 1위를 다투는 홍준표 의원은 현 정부와 청와대는 ‘주사파’이고 이대로 가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은 세계지도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좌파정권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겠다는 식의 인식은 보수 진영의 다른 대선 주자들도 대동소이하다. “좌파 사회주의 망국의 길로 갈 것이냐, 아니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로 갈 것이냐”가 보수 진영 역사인식의 핵심이다. ‘갈림길론’이다. 문재인 정부의 몇몇 정책 실패에 대해 ‘설익은 모험주의’라고 비판한다면 동의할 생각이 있다. 그러나 냉전시대의 빨갱이론을 활용하려는 퇴행적 시도는 진보 진영의 단계론에 힘을 실어줄 뿐이다.
단계론과 갈림길론의 공통점은 필연적으로 유령과 퇴마사를 불러낸다는 점이다. 단계론의 유령은 자신의 사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다음 단계로의 사회 진화를 끝끝내 발목 잡으려는 기득권층이다. 진보정치는 기득권 유령을 제거하는 퇴마의식이 되어버린다. 갈림길론의 유령은 잘못된 길로 나라를 끌고가려는 좌파세력이다. 보수정치는 빨갱이 유령을 제거하는 퇴마의식이 된다. 퇴마 정치다. 현실 속에는 진보의 유령도, 보수의 유령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려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역사가 그리 단순하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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