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며칠 전 시사회에서 본 <쎄시봉>은 복고음악을 배경으로 순수한 첫사랑의 추억을 그린 영화다. 재미도 있고 흥행할 요소도 두루 갖췄다. 그런데 누리꾼 평점이 죄다 10점 만점에 1점이다. 쓰레기 같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도 이 정도는 아니다. 이유인즉 여주인공을 맡은 배우 한효주 때문이란다. 그의 동생은 지난해 군대 가혹행위 가해자로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았고, 이 사건은 군 검찰에서 기소유예로 일단락됐다. 후폭풍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공인’이자 ‘가해자의 누나’인 한효주가 광고에서 퇴출돼야 한다는 서명운동이 진행됐고, 그가 도의적인 사과를 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쳤다. 그러고는 개봉을 앞둔 그의 출연작에 대한 평점테러로 이어졌다.
엉뚱한 대상에 대한 마녀사냥식 여론몰이가 안타깝다. 철저한 진상조사와 제도 개선을 누가 바라지 않겠나만 화살의 방향은 잘못된 것 같다. 물론 대중의 분노는 이해된다. 지난해 윤모 일병 사망사건에 치떨리지 않았던 사람이 몇이나 될까. 군복무에 대한 거부감도 강해졌다. 높은 분 자제들이 그런 일을 당했다는 이야긴 못 들어봤으니. 하긴 그분들이 그런 일 당할 계제인가. 군대를 안 가는데 무슨 수로. 그 분노의 바닥엔 억울함과 깊은 상실감이 뒤섞여 있을 게다.
10여년 전 병역비리가 연예계를 뒤흔들었다. 당시 소변검사 조작으로 사구체신염 판정을 받는 수법을 썼다고 밝혀졌던 배우 송승헌, 장혁, 한재석 등은 결국 군복무를 했고 자숙하며 혹독한 시간을 보냈다. 가수 싸이는 3년간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했지만 부실근무 판정을 받고 재입대를 했다. 미국 시민권을 따서 병역을 피했던 가수 유승준은 한국땅에 입국조차 안된다. 병역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가수 MC몽은 여전히 ‘죽일 놈’이다. 간혹 합법적으로 면제를 받더라도 왠지 죄스러운 분위기는 감내해야 한다. 신성한 의무를 훼손하거나 완수하지 못한 데 따른 대가다.
그런데 연예인과 함께 종종 ‘공인’으로 묶이는, 나랏일 하시는 분들에겐 병역면제가 ‘스펙’이다. 증거까지 흔들어대며 큰소리치는 모습을 보면 벼슬도 이런 벼슬이 없다. 김진태 검찰총장 아들의 병역면제 사유는 사구체신염이었다. 사회지도층에만 생기는 희한한 병의 이름을 오랜만에 다시 듣게 돼 웃었던 기억이 난다.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의 군복무도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싸이라면 정말 억울할 것 같다. 조신 미래전략수석은 45㎏이 안돼서 군대를 못 갔다. 하루 대여섯 시간 춤연습을 하면서도 새 모이만큼 밥을 먹는 걸그룹 가수들은 45㎏을 넘기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한다. 병역뿐인가. 탈세나 탈루 의혹에 대한 공직자들의 대응과 반응은 방송인 강호동이나 배우 장근석 등 연예인과는 사뭇 다르다. 같은 망언을 해도 연예인은 한방에 훅 가는 반면 공직자들은 확신범이 된다. 이러니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는 집단이 연예인이라는 한탄이 나온다.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연수원 집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_ 연합뉴스
많이 누리고 많은 영향력을 끼친다는 점에서 연예인과 공직자들은 상대적으로 엄한 대중의 비판과 감시의 칼날에 서 있다. 때로는 사생활도 보호받지 못한다. 그렇지만 두 집단을 재단하는 대중의 잣대가 전자에겐 지나치다 싶을 만큼 엄격하고 후자에겐 맹탕이다. 한쪽에 과도한 화력을 쏟다보니 정작 다른 쪽에 쓸 여력이 없는 걸까? 전경으로 복무했던 후배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한쪽은 원래 그렇게 해먹던 놈들이라고 접고 보잖아요. 그게 사각지대가 되는 거지. 정말 머리 잘 썼어. 연예인들이야 눈앞에 보이고 만만하니 퍼붓는 거고요.”
분명히 기억해야 할 건 이들 중 누가 내 삶에, 내 자식의 앞날에 더 큰 영향을 미칠지다. 한쪽은 순간 배 아프고 말면 그뿐이지만 또 한쪽은 배 아프고 배까지 고파야 한다. 그것도 오랫동안.
박경은 대중문화부 차장
'일반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설]여군 성폭행 지휘관 감싼 송영근, 국회의원 자격 없다 (0) | 2015.01.30 |
---|---|
[사설]이 전 대통령, 남북관계 망치려고 ‘비밀 대화’ 폭로했나 (0) | 2015.01.30 |
[사설]건보료 개편 중단한 정부, 무능하고 무책임하다 (0) | 2015.01.29 |
[사설]전 해군참모총장까지 연루된 방산 비리 (0) | 2015.01.29 |
[기고]‘남북연합 이극로 학술제’를 열어보자 (0) | 2015.0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