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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 작업을 돌연 중단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어제로 예정된
개선안 발표를 무기 연기하는 한편 “금년 중에는 개선안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가운데 하나로서
민관 전문가로 개선기획단을 꾸려 3년에 걸쳐 논의해온 주요 국정 과제를 하루아침에 사실상 백지화한 셈이다.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977년 건보제도 도입 이후 38년 동안 유지돼온 현행 건보료 부과체계는 가장 형평성에 어긋나는 정책 가운데 하나로 꼽혀왔다.
상당한 소득과 재산이 있어도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는 건보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 반면 직장이 없는 지역가입자는 상대적으로 높은
건보료를 내는 식의 모순투성이였다. 김종대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반지하 셋방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다 자살한 송파 세 모녀의
건보료는 5만140원이었는데 5억원이 넘는 재산과 연 2300여만원의 연금소득이 있는 나는 직장가입자인 부인의 피부양자로 자동
편입돼 퇴직 후 건보료가 0원이 된다”며 스스로 문제점을 짚었을 정도다.
14년도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소득 중심 개편 방향 (출처 : 경향DB)
그동안 개선기획단이 논의해온 개편 방향도 바로 이러한 불합리를 시정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직장·지역가입자에게 다르게 적용되던
부과체계를 소득 중심으로 바꿔 저소득층의 부담은 줄여주는 대신 고소득 직장가입자와 소득이 있는 피부양자의 부담을 늘리는
방식이었다. 개선안에 따르면 소득이 적은 지역가입자 602만가구의 건보료가 내려가고 월급 외에 금융·사업소득이 있는 직장가입자
26만명과 고소득 피부양자 19만명 등 45만명은 올라간다. 송파 세 모녀의 경우 월 1만원 정도로 건보료가 줄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소득 중심으로 부과체계를 개선해나가는 논의를 정부가 갑자기 무위로 돌린 것은 연말정산 파동에 이어 일부 고소득자의 반발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어제 건보료 개편 백지화 의혹에 대해 “백지화된 게 아니고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검토해서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내년에 총선이 있고 곧바로 임기말과 대선으로 이어지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를 넘긴다는 것은 건보체계 개혁을 포기하겠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그것은 정부에 대한 더 큰 불신과 사회적 갈등을 초래하는 악수가 될 것이다. 이미 사회적 합의를 이룬 것이나
다름없는 개선안을 발표하고 예정대로 추진하는 것이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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