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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15일은 북녘의 조선글날(훈민정음 기념일)이었다. 실제 그곳에서 어떤 기념식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공식 기념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북녘은 ‘한글’이란 말 자체를 쓰지 않으므로 이렇게 부른다. 남녘과 같은 한글날은 없지만 이에 준하는 기념일이 있는 셈이다. 북녘은 한글(훈민정음) 창제를, 남녘은 한글 반포를 기준으로 삼다 보니 이런 차이가 생겼다. 한글 창제는 1443년 음력 12월에 이루어져 특정 날짜는 모른다. 그래서 음력 12월15일을 기준으로 그것을 양력으로 바꿔 기리는 것이 북녘의 조선글날이다.

창제와 반포 모두 소중하니 한민족 전체로 보면 두 기념일 모두 나름의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 창제한 날과 반포한 날 모두를 기리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남북 연합 이극로 학술제’를 제의한다. 올해는 한글날에 남녘에서 하고 내년엔 조선글날에 북녘에서 비슷한 행사를 하는 식으로 한다면 한글 발전뿐 아니라 통일을 위해서도 매우 값진 일이 될 것이다. 이극로는 남북 모두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유일한 국어학자이자 한글운동가로 우리말글 연구와 발전에 빛나는 업적을 남긴 분이다.

이극로는 1893년 태어나 1978년, 86세의 나이로 북녘에서 운명했다. 일제강점기에 독일에서 경제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1929년 귀국해 조선어학회를 앞장서 이끌었다. 조선어학회를 이끈 대표적인 인물이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말 사전 편찬을 역설하고 실제 편찬사업의 핵심 구실을 했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검거되어 투옥된 33인 가운데 최장기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광복이 되면서 풀려났다. 1948년 4월 남북조선 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 초청장을 받고 평양에 갔다가 홍명희 등과 함께 북녘에 정착했다. 그는 초청을 받고 김구 선생과 함께 평양에 갔다가 그곳에 잔류하는 바람에 한글학회에서 1957년 완성한 우리말큰사전을 보지 못했지만 대신 북녘에서 우리말글 관련 업적을 많이 남겼다. 결국 남북을 잇는 주요한 우리말글 공로를 남긴 셈이다.

남북 연합 학술제 첫 번째 주제로 이극로 선생을 기리고자 하는 것은 해방 전후 한결같이 겨레 말글을 위해 애쓴 한글학자이자 한글운동가였기 때문이다. 사실 통일을 위한 남북 동질 요소 가운데 한글만한 것이 어디 있는가? ‘한글’의 상징성을 살리기 위해 이극로 선생의 한글사랑을 기리자는 것이다.

한글날인 9일 세종마을 가꾸기회 주관으로 서울 광화문 누각을 출발해 세종마을과 수성동 계곡을 향하여 세종 어가행렬이 시민들과 함께 출발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둘째 그의 사전 편찬 업적이 지금 남북 통일의 초석이 될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의 토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4년 남측의 통일맞이와 북측의 민족화해협의회가 주축이 되어 겨레말큰사전 사업이 시작되어 2019년 상반기에 완성될 예정이라 한다.

셋째 이극로는 훈민정음과 우리말 연구에서도 남다른 업적을 남겼다. 그는 경제학 박사이기도 하지만 언어학 연구 쪽으로 더 값진 업적을 남겼다. 그는 해방 전 <훈민정음의 독특한 음성 관찰>, 〈‘·’의 음가에 대하여>와 주옥같은 논문을 썼고, 해방 이후에도 <실험도해 조선어 음성학>, <조선말 조(調) 연구> 등을 남겼다.


김슬옹 | 한글학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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