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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인 13일 고척돔 야구장에서는 한국시리즈 1차전이 열렸다. 사람들은 관중석에서 KT와 두산을 응원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야구장에서는 접종완료자들의 경우 치맥을 즐기면서 응원할 수 있었다. 지난 11일에는 경기도 고양종합운동장에 축구팬 3만명이 운집해서 태극전사들을 응원했다. 14일에는 K팝 공연장에 3000명이 모였다. 반가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2년 만에 공연장이 열리고, 운동장에 관중이 들어섰다. 온라인이 아니라 대면 공연과 경기가 펼쳐진 것이다. 이렇게 일상회복 1단계가 진행 중이다.

고척돔 야구장에서 한국시리즈가 열리던 지난 13일은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지 51주기였다. 노동자들은 매년 이날을 맞아 전국적인 대회를 열고는 했다. 민주노총은 방역지침에 맞춰 499명씩 모이는 집회로 여러 개로 나누어서 신고했지만, 경찰은 동일한 집회라는 이유를 들며 집회 금지를 통보했다. 민주노총이 집회를 포기하지 않자 당일 광화문역 등 6개의 지하철역과 그 인근의 36개 버스 노선을 무정차 운행하도록 했다. 결국 노동자들은 광화문 인근에 모이지 않고 동대문 인근에 모여서 집회를 강행했다. 그러자 경찰은 즉각적으로 이를 불법 집회로 단정하고 수사 인원을 늘리고 집회 참가자 전원을 고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민주노총이 신고한 집회는 실내 집회도 아닌 야외 거리집회였다.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방역수칙을 지킨다면 감염 위험성이 현저히 낮은 경우다. 이와는 달리 대선 후보 경선이 진행되던 중에는 경선장에 사람들이 대거 모였고, 후보들을 중심으로 수십명, 심지어는 수백명이 운집하는데도 이를 막지 않는다. 대선 후보 경선장에 모인 사람들은 코로나19 방역지침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듯 보였다. 그들은 지지하는 후보들의이름을 연호하는 등 실내 장소에서 밀집해서 행사를 치렀다.

현재 거리에서 하는 집회는 100명 미만만 허용된다. 전원 백신 접종완료자일 경우는 500명 미만까지 허용된다. 이전보다는 훨씬 완화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집회·시위는 통제의 대상이 되고 있다. 대선 경선장에 수백명이 모이는 건 위험하지 않고, 야구장과 공연장에는 수천, 수만명이 모여도 괜찮고, 야외 거리에 수백명이 모이는 것은 위험하다는 근거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겠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우리 사회에서 집회와 시위는 금지 영역으로 굳어져 가고 있는 듯 보인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우선해서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49조에 의거하여 지자체장이 집회를 금지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서울시장이 지난해 2월26일 서울의 도심 지역에서의 집회 금지 조치를 내렸고 전국 지자체가 서울시를 그대로 따라서 했다. 일상회복 1단계로 전환되기까지 서울 도심 지역에서 집회는 10인 미만이었다. 집회를 할 수 없게 되자 기자회견을 통해 의사를 밝히고자 했지만, 경찰은 기자회견에서는 1인만 발언할 수 있다는 방침을 적용해 왔다. 그래서 기자회견을 시작하면서 참석자 전원이 사진을 찍은 다음 1인씩 마이크 앞에서 발언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도 벌어진다. 그리고 슬그머니 차벽이 등장했다. 차벽은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린 사안으로 마지막 수단이어야 한다고 했지만 이는 무시되었다. 코로나 상황에서 영업 손실이 너무 커서 생존권을 위협받는 자영업자들의 야간 차량시위도 금지되었다.

여기에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있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주로 가난한 자, 힘 없는 자, 약한 자에게 필요한 권리다. 현재 이들이 주로 주장하는 내용은 생존권이다. 생존권을 위협받는 사람들이 이제는 집회와 시위의 자유마저 박탈당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 집회로 모일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 목소리들은 널리 퍼지지 않고, 온라인 공간에만 머문다.

과거 민주정부로 분류되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처럼 임기 막바지에 갈수록 생존권을 요구하는 집회와 시위에 엄정한 법질서와 무관용 원칙을 들이댔던 일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공연장이나 야구장, 축구장에서처럼 집회와 시위의 자유도 원상회복해야 할 일 아닌가? 헌법에 의해서, 그리고 국제인권법에 의해서 보장되는 집회와 시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최소한도로 그쳐야 한다. 집회와 시위를 적대시하는 지금의 불합리한 방침은 철회되어야 한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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