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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영등포산업선교회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노동조합을 ‘노동자들의 교회’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다. “여기(노동조합)에서 인간의 권리가 무엇인가를 배우고, 민주주의를 배우고, 이웃사랑을 배우고, 희생과 봉사를 배우고,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이 무엇인지도 배우며, 사회정의와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싸우는 것도 실천적으로 배우고, 참평화가 무엇인지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노동자 쉼터 활동가들 인권 강의를 의뢰받고 찾아간 영등포산업선교회(성문밖교회·이하 산선) 지하에 있는 역사관에서 본 조지송 목사님의 말이다. 한때 도산(도시산업선교회의 줄임말)으로도 알려졌던 산선은 우리나라에서는 1958년 시작됐고, 지금의 영등포산선 건물은 1978년 건립됐다. 노동자들을 의식화해 노사분규를 일으키는 주범으로 찍혔고, 그래서 1982년 경향신문은 ‘都産(도산) 오면 倒産(도산)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쓰기도 했다.

1970~1980년대 산선은 갈 곳 없는 무권리 상태의 노동자들을 비롯해 약자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다. 교회 외에는 모든 공간이 봉쇄되어 있던 시절에 그곳에서 공부도 하고, 토론도 하고, 수많은 집회가 열렸다. 그래서 교회 주변에는 늘 경찰들이 눈을 부라리며 드나드는 사람들을 감시했고, 예민한 집회가 열릴라치면 원천봉쇄가 되고는 했다. 1970년대에도 조직을 유지했던 민주노조들이 전두환 정권에서 모두 강제 해산되었을 때도 이곳을 중심으로 소그룹 모임을 유지하면서 혹독한 시기를 견뎌냈다. 한때 무려 150개의 소모임이 진행되었을 정도였다.

그 시기 학생운동가들은 위장 취업을 해 노동현장으로 들어갔다. 노동자들을 만나 다양한 소모임을 만들어냈고, 그 힘으로 6월항쟁에 이은 노동자대투쟁을 일궈냈다. 1987년 7월부터 3개월 동안 전국 각지에서 민주노조들이 만들어졌다. 이 시기에만 생겨난 민주노조들이 무려 1300개였다. 지역의 한 사업장이 파업을 하게 되면 그 지역의 모든 노동자들이 달려가 밤을 새우며 그 현장을 지켜냈다. 지역의 학생들과 지역사회운동 조직들도 헌신적으로 지원했다.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마다 연대의 움직임은 감동적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민주노조들은 전노협 시절을 경과해 민주노총으로 결집되었다.

그런 지 30여년이 지난 오늘에 보면 연대 투쟁의 힘은 한없이 작아지고 있다. 지역의 노동자들이 투쟁을 벌여도 형식적인 연대를 못 벗어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의 민주노총은 총파업은 매년 되풀이하지만 제대로 위력적인 파업을 못 만들어내고 있다. 정치권으로부터도 외면받고, 노동자와 다른 시민들로부터도 외면당한다.

영등포산선은 지난 11월 리모델링해 재개관했는데, 지하의 작은 역사관에서는 산업선교에 나선 이들의 훈련지침도 볼 수 있었다. “노동자의 언어로 말하고 종교적 언어로 말하지 말라”는 지침을 제일 앞머리에 세웠다. 노동자의 고통에 가슴으로 연대하고, 노동체험을 반드시 하도록 했다. 이 지침을 실천하였기 때문일까? 극심한 탄압 속에도 노동자들은 이곳을 찾았다.

영등포산선을 본 다음에 내가 간 곳은 사단법인 희망씨의 후원행사장이었다. 사단법인 희망씨는 희망연대노조가 만든 사단법인이다. 희망연대노조는 처음 노조를 만들 때부터 ‘지역사회연대’를 강조했다.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의 정규직을 위해 싸우고, 임단협 때에도 사회공헌기금을 사측으로부터 받아냈다. 거기에 노조의 기금까지 더해 지역사회를 위한 지원만이 아니라 네팔에 학교를 짓고 운영하는 기금도 지원하고 조합원들이 지역봉사활동에 적극적이다. 이런 노조가 영등포산선이 만들려던 노조가 아닐까?

그 희망씨에서 이번에는 “노동자와 지역이 함께 힘을 모아 아동청소년이 건강한 노동자로 성장하는 공간” ‘아띠’(친한 친구라는 뜻의 우리말)를 만든다고 한다.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모여 자신들의 모임도 하고, 노동인권 가치도 배울 수 있는 공간, 그래서 독자생존의 혹독한 경쟁이 아니라 연대를 통해 더불어 존엄하게 사는 세상을 체득하는 그런 공간을 만들겠다고 한다. 2023년에 ‘아띠’가 만들어지고, 곳곳에 그런 공간이 생긴다면 지옥 같은 노동현실을 벗어나는 힘을 얻을 것이다. ‘공순이, 공돌이’가 영등포산선에 와서 노동자와 인간의 존엄함을 배웠듯이.

간절한 마음으로 청소년들이 건강한 노동자로 성장할 공간 ‘아띠’의 탄생을 기다린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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