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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이 발표된 2017년 7월 이후 2021년 12월 말까지 전환이 완료된 노동자는 19만7866명이다. 그중 파견·용역에서 자회사로 전환된 노동자들은 5만112명으로, 공공기관의 간접고용 노동자 7만6903명 중 65.2%가 자회사로 소속이 변경되었다. 자회사 고용은 공공부문의 주요한 한 축을 담당하는 셈이 됐다. 그러나 ‘정규직’이라는 정부의 말과 달리 노동자들의 권리 상태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자회사를 설립할 때부터 모기관은 자회사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을 최저한도로 묶었다. 자회사 노동자들의 최초 입사 시급은 최저임금이거나 그를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용역업체의 임금 수준을 자회사로 옮겨오다 보니 주로 그 기준으로 삼았던 시중노임단가에 기존 용역계약에서의 낙찰률을 적용했다.

예를 들어 시중노임단가가 9000원(2019년 적용 시중노임단가)이면 그에 낙찰률 약 88%를 적용해 7920원이 기본 시급이 되는 식이다. 그런데 당시 2019년 최저임금은 8350원으로 시급이 최저임금 미만이 되므로, 결국 최저임금이 기본 시급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설계된 직무임금체계하에서 노동자들이 임금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수당을 통해 보완하는 것이었다. 실제 자회사 중 임금이 조금이라도 높은 곳은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한 명절휴가비, 식대와 같은 처우개선 외에 한두 개라도 수당이 더 만들어져 있는 경우다. 그러나 이러한 수당 신설은 제도에 의해 가로막혔다. 정부는 전환 시 새로운 수당 신설을 막았고, 이는 노동자들을 용역 수준의 임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된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모든 자회사에 한 자릿수 인건비 인상률이 강요됐고, 이는 모기관과의 임금 격차를 키우는 원인이 되고 있다.

자회사는 모기관과의 계약에 전적으로 의존하기에 결국 자회사 노동자들의 임금 문제는 모기관이 책정하는 용역대가와 연관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모기관은 용역계약의 예정가격을 산정할 때도 시중노임단가에 낙찰률을 적용하고, 이렇게 산정한 예정가격에 과거 용역업체 계약 시와 유사한 낙찰률을 다시 적용한다. 계약 과정에서 이중으로 인건비가 하락하는 과정이 벌어지는 것이다. 낙찰률 적용 없이 예정가격 100%를 적용하라는 것, 시중노임단가를 임의적인 비율로 삭감하지 않고 그대로 적용하라는 것, 충분한 인력을 배치하라는 것 등의 요구가 모기관을 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실제 모기관은 자회사의 운영에 대해 강한 지배력을 행사한다. 경영을 보고받고, 평가하며, 이런 관리와 운영의 지배는 일상적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노동관계는 그 벽을 넘어서지 못한다. 공공기관의 자회사 노동자들이 모기관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한 건에 대해 중앙노동위원회는 모기관의 교섭 의무가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 모기관의 업무 지시, 노동조건에 대한 사실상의 결정 등에 대한 무수한 노동자들의 주장은 입증이 불충분하다는 간소한 말로 내쳐졌다. 고용에 대한 책임 회피, 이것이 바로 대다수 공공기관들이 직접고용이 아닌 자회사라는 선택지를 고른 이유이다.

제도적으로 원·하청협의체를 운영하도록 하고, 이를 모기관의 경영평가에도 반영한다고 하지만 이는 서류상 ‘했음’으로 표기되면 그만이다. 원·하청이 함께 안전보건협의체 논의를 하도록 하고도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협의 한 번 하지 못했고, 자회사 노동자들의 건의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절차 한 번 없어도 상견례를 한 번 하면 그만인 것이 대다수 자회사의 원·하청협의 실태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권리들이 서류에 쓰일 뿐, 자회사 노동자들의 현실은 여전히 자회사-모기관, 그 위에 정부의 정책이 통제하는 중첩적인 간접고용 구조 속에 있다.

노동자들의 요구로 계약 실태는 미미하나마 개선되고 있고, 정부는 모기관의 자회사 운영을 더 꼼꼼히 평가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할까. 자회사에 맡겨진 업무는 애초 모기관이 공공기관으로서 수행해야 하는 업무다. 자회사 노동자들의 노동으로 이윤을 얻고, 기관의 유지와 운영을 위해 그 노동을 필요로 하는 것 역시 모기관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에 대한 책임이 따라야 한다. 간접고용 구조가 그 안정성과 안전을 해치고, 노동자 권리 침해를 야기한다는 사실은 더 이상 증명이 필요하지 않다. 사회의 필요에 따라 유지되고 운영되는 공공기관의 공적 책임은 자회사의 외양을 갖추는 것으로 결코 덜어지지 않는다. 공적 서비스의 안정적 운영, 사회의 안전은 결국 공공기관의 책임이며, 공공기관을 감독하는 정부의 책임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지해야 할 것이다.

 

엄진령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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