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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9 대선에서 2위를 했던 홍준표 후보는 자유한국당 대표로 정치에 복귀했다. 3위 안철수 후보도 국민의당 대표로 돌아왔다. 4위 유승민 후보도 바른정당 차기 비대위원장으로 거론되고 있다. 대선 넉달 만에 선거에서 경쟁했던 유력 후보들이 모두 제1, 제2, 제3야당 대표로 돌아와 정치를 함께하고 있거나 전면에 나설 참이다. 한국 정치사상 초유의 일이다. 과거엔 대선에서 지면 유권자의 뜻을 헤아리며 성찰의 시간을 갖고 새로운 도약을 모색했다. 이젠 초등학교 반장 선거에서 떨어진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됐다.

 

홍준표 대표는 원외다. 원외 대표는 힘이 없다. 김장겸 MBC 사장 지키기를 위한 국회 보이콧은 원외인 홍 대표의 당내 입지를 굳히는 데 활용됐다. 문재인 정부와 정면대결함으로써 문 대통령과 일대일 대결 구도를 구축하는 것이다. 박근혜·이회창·김대중 같은 강력한 ‘야당 대통령’이 목표다. 홍 대표는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1억원을 받은 혐의로 대법원 재판에 계류 중이다. 1심 유죄, 2심 무죄였다. 만에 하나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면 그의 정치생명은 끝이다. 그는 지금 강해야 살 수 있다. 홍 대표는 보이콧을 결정한 의총에서 “지지율 걱정도 있지만 우리는 밑바닥에 와 있다.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다”고 했다. 당뿐 아니라 자신의 처지를 푸념한 것으로도 들린다.

공영방송 장악 저지는 허울뿐이다. 세계 어느 공영방송이 뉴스 시청률 5%에 신뢰도 최하위인 데가 있겠는가. MBC는 공영방송이랄 것도 없다. 김장겸은 대여투쟁의 신호탄이었다. 홍준표는 김장겸이 아니라 뭐라도 대여투쟁의 꼬투리를 잡았을 것이다.  

홍준표의 한국당은 사안이 무엇이든 반대 아니면 취소, 거부다. 청와대 회동 거부, 여·야·정 협의체 거부, 원내교섭단체 연설 거부, 여야 대표 만찬 취소, 인사 반대, 부동산·증세·복지 정책 반대…. 관성적 반대를 하다보니 공관병 갑질로 옷 벗은 육군 대장마저 “좌파단체가 군 장성을 여론몰이로 내쫓았다”고 감쌌다. 그에겐 여론을 거꾸로 보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홍준표는 ‘김영삼 키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87년 직선제 개헌 추진 당시 주변에서 100만명 서명운동을 제안하자 “그걸 누가 세어 보겠노”라며 1000만명으로 올리라고 했다. 핵무장 1000만 서명운동은 YS 흉내내기다. 홍준표의 야심은 제2의 YS가 되는 것이다.

흔히 시민들의 이념 성향은 보수 40%, 진보 30%, 중도 30%로 구성돼 있다고 한다. 이런 분포도는 큰 의미가 없다. 이젠 이념이 아니라 가치다. 현실은 정의 80%, 정의에 대한 반발 10%, 무관심 10%로 바뀌었다. 한국당은 정의에 대한 반발 세력 10%에 기대고 있다. 친박과 극우, 재벌과 초고소득자다. 제1야당이 시민이 아닌 특정 소수세력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불행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총선에서 여소야대 4당 체제가 이뤄졌다. 군사정권 시절이었지만 여야는 5공 비리와 지방자치제 시행, 5·18민주화운동 등 난제를 하나하나 해결했다. 법안 처리율은 81.1%였다. 당시 평민당 원내총무를 맡아 김윤환 민정당 원내총무와 협상에 나선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역지사지(易地思之) 정신에 입각해 야당이 과도한 힘을 앞세워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여당의 지위와 역할을 존중했다. 야당이 합리적인 정책과 대안을 많이 냈다”고 회고했다. 20대 국회의 현재까지 법안처리율은 17%다. 야당 복도 따로 있는 모양이다.

정치인은 시민의 눈높이에서 볼 줄 아는 상식이 필요하다. 상대를 적이나 동지로 대하는 사고로는 곤란하다. 홍 대표는 대선 패배 직후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한국당은 정의와 형평을 상실한 이익집단이었기 때문에 청·장년들의 지지를 상실했다고 본다. 정의와 형평은 그들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이다.”

정확한 진단이다. 그런데 달라지지 않는다. 한국당은 주도 세력도, 정책도 그대로다. 정의롭지 못하고, 형평을 지키지 못하고, 합리적이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주지 못하고 있다. 신진세력에 문호를 개방하지도 않는다. 이대로라면 지지를 회복하기는 난망이다. 친여보수언론의 프레임 짜기는 과거처럼 쉽게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 촛불이 증명해줬다. 시민들은 “3년(2020년 총선)이 너무 멀다”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서 보자”고 아우성이다. 당장 내년 지방선거에서 한국당 간판은 수도권에서 보기 힘들 수도 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2016년 총선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은 무릎 꿇고 절하고 읍소했다. “한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도와주세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습니다”. 2018년에도 또 기회를 달라고 할 것인가.

<박래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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