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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11일 부결됐다. 임명동의안 가결에는 출석 의원 과반의 찬성이 필요했으나 찬성 145명, 반대 145명으로 2표가 부족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 후보자를 헌재 소장에 지명한 것이 지난 5월19일이다. 헌재는 한국의 민주주의와 시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다. 국정을 농단한 박근혜 정권을 몰아내고 평화적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진 것은 헌재가 제 역할을 다한 덕분이다. 그런 기관의 수장을 결정하는 임명동의안을 야당의 발목 잡기로 지금껏 시간을 끌다가 작금의 사태에 이르렀으니 참담하기 그지없다.

 


헌재 소장 임명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것은 김 후보자의 성향이 진보적이라는 이유로 보수야당 의원들이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김 후보자는 2014년 12월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때 재판관 9명 중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냈다. 2015년 5월 헌재가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든 근거인 교원노조법 조항이 합헌이라고 결정할 때도 김 후보자는 해당 조항이 해직 교사의 자주성과 단결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할 수 있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철 지난 색깔론도 우습지만 소수 의견을 냈다는 사실을 결격 사유로 주장한 것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이번 부결로 박한철 전 소장 퇴임 이후 역대 최장을 기록하고 있는 헌재 소장 공백 사태는 계속될 수밖에 없게 됐다.


국민의당 등 일부 야당 의원들은 이날 표결 직전까지도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 찬반 여부를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 등의 문제와 연계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정략적 발상에 빠져 있었다.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고, 대통령 탄핵 등을 결정하는 최고 헌법재판기관을 일개 장관과 청와대 행정관 인사 문제와 결부시킨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도 헌재 소장 임명은 쉽지 않고, 국정도 안정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야당은 부결 결과에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야당이 아무리 국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논리도 명분도 없이 힘으로 국정을 발목 잡는 것은 너무나 뻔뻔한 일이다. 이번 사태로 야당의 미래는 더욱 어두워질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번 부결 사태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문 대통령은 김 후보자를 지명한 뒤 국회 임명동의안 통과를 위한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 여당 역시 대통령 지지율만 바라보며 야당 의원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하지 않았다. 집권세력의 이런 자세로는 개혁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와 여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검찰·국정원 개혁, 방송개혁, 증세, 건강보험 확대 등 각종 개혁 입법을 추진할 예정이다. 정부와 여당은 민생과 적폐청산을 위해 필요한 법안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보수야당은 정치 보복이라거나 국가 재정을 허약하게 할 포퓰리즘 법안이라며 맞서고 있다. 


이런 대립을 해소하려면 문 대통령과 여당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진정한 협치의 길로 나가야 한다. 감정적 대립으로 치닫는 정국 상황을 방치했다가는 개혁도 물거품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청와대가 “무책임의 극치, 반대를 위한 반대로 기록될 것”이라며 야당을 직접 공격하는 것은 적절했다고 보기 어렵다. 야당의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청와대 책임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청와대는 야당과 진지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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