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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돈이 없다”며 초·중·고 급식을 유상으로 바꿨다. 명분은 ‘부자 자식들에게 공짜 밥을 줄 필요가 없다’였다. 홍 지사는 과연 ‘부자 자식들’의 숟가락만 빼앗았을까.

경남도는 완전 무상급식을 하고 있지 않다. 지난해 경남도에서 무상급식 혜택을 받은 학생들은 초등학생 전원과 농촌지역인 읍·면지역 중·고등학생들이었다. 이들은 도내 학생 44만7000명 중 절반이 약간 넘는 28만5000명이었다. 나머지 도심지역 중·고등학생들은 원래 돈을 내고 먹었다. 홍 지사는 이런 수준의 무상급식 때문에 경남도의 재정이 위태롭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초생활수급자 등 저소득가구 학생 6만6000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밥값을 내도록 만들었다. 이제 도내 학생 중 밥값을 내지 않는 학생은 15%다. 85%는 돈을 내야 한다. 즉 소득하위 15%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밥값을 내야 한다. 소득계층을 5분위로 나눌 때 최저소득계층인 1분위는 소득하위 20%까지다. 경남도에서는 소득하위 20% 학생들 중에서도 밥값을 내야 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의미다. 홍 지사가 ‘부자’ 운운하면서 뺏은 숟가락에는 중산층은 물론이고 서민층 학생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경남도가 생각하는 선별복지의 기준은 어딜까. 무상급식 대신 하겠다는 저소득층 교육지원사업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소득하위 30%다. 경남도는 소득하위 30%는 4인가족 기준으로 연봉 3000만원쯤 된다고 했다. 3인가구 기준으로 하면 연봉 2600만원쯤 된다. 경남도 기준이라면 월소득 200만원만 되면 복지를 해줄 필요가 없는 계층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왜 아이들 밥만 문제를 삼는 것일까. 초·중·고 학생들에게만 국가재정 위기의 책임을 지우는 것은 부당해 보인다. 형평성을 따진다면 복지혜택을 받는 7세 이하 유아와 65세 이상 고령자도 동참해야 한다. 유아라면 누구나 받는 보육비는 저소득층으로 한정하고, 할아버지·할머니라면 누구나 공짜로 타는 지하철도 저소득층으로만 한정해야 한다. 또 있다. 65세 이상 소득하위 70%가 받는 기초연금 기준도 너무 높다. 저소득 고령자들에게만 줘야 한다.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먹일 밥값조차 없는 나라가 보육비나 어르신들 용돈은 있다고 보기 힘들다.

1일 오후 경남 창원시 의창구 동읍 신방초등학교 급식소에서 한 교사가 무상급식 지원 중단에 항의하는 뜻에서 '한 끼 단식'을 하고 있다. _ 연합뉴스


초·중·고 학생들의 밥이 유상급식으로 전환되면 틀림없이 다음은 보육비와 지하철 무임승차, 기초연금으로 향한다. 경남도의 무상급식 예산은 전체 예산의 0.5%. 300만원 월급을 받는 가정에 비유해보면 1만5000원을 아낀 꼴인데 이것을 줄여서는 적자투성이 가정경제가 나아질 리 없다. 밖에서 골프채 들고 모범택시를 타고 다니던 아버지는 아들 밥값을 깎았으니 이번에는 아기 분유값과 부모님 용돈도 깎자고 나올 게 틀림없다. 무상급식 논란이 그저 초·중·고 자녀를 둔 학부모 이야기만으로 치부돼서는 안되는 이유다. 머지않은 장래에는 유아를 가진 가정과 고령자들에게도 복지 삭감의 칼날이 돌아온다. 내 일이 아니겠지 하는 순간에 대세는 복지축소로 이어지고, 그때는 내 하소연을 들어줄 사람도 없다. 단지 언제 시행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복지줄이기 경쟁’의 결과는 “내 돈 벌어 내 부모·자식 먹여 살리자”로 끝난다. 1970년대로의 회귀다. 다시 장남이 가족을 책임지는 시대가 올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 같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부모님 부양책임은 가족’이라는 답변이 1998년 90%에서 지난해에는 33%까지 줄어들었다. 대신 ‘가족과 정부, 사회의 공동책임’이라는 응답이 2%에서 47%로 늘어났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퇴행한 것들이 많다. 이젠 복지도 퇴행의 시대에 동참하고 있다. 가족에게서도, 정부와 사회에서도 도움받지 못하는 자식들과 부모들은 어디로 내몰리게 될까. 참고로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다.


박병률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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