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혁명의 시대는 아니었으나 시절의 공기에는 혁명의 신열이 가시지 않고 남아 있었다. 군부정권이었지만 군부독재라고 부르기도 힘들었다.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정권 타도’를 외쳤지만 정권이 정말 타도될 것이라고 심각하게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시대였다. 몸에 밴 비장함은 영화 속 찰리 채플린의 기계적 움직임처럼 우스웠고, 저마다 비극의 주인공을 자처했지만 실은 소극의 주인공일 뿐이었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1990년대 초반의 이야기다.

내가 손석희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의 원형이 만들어진 것도 그 시기였다. 한 장의 사진이 특히 강렬했다. 푸른 수의를 입고 수갑과 포승에 묶인 채 법정에 들어서는 손석희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당시 MBC 파업의 도덕적 자신감을 이보다 잘 보여주는 장면은 없다. 기억이 흐릿해 기사를 검색해보니 1992년 사진이라고 나온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 따른 농가의 피해를 보도하려는 걸 사측이 막자 노조가 파업에 나섰고, 당시 MBC 아나운서였던 손석희도 파업에 참여해 구속됐다.

그때부터 손석희는 내게 직업윤리의 어떤 표상처럼 느껴졌다. 바야흐로 혁명가의 시대는 가고 전문가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었는데, 손석희는 모름지기 전문가의 마음자세와 직업윤리는 어때야 하는지 몸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받은 그런 인상에는 이미지 시대의 도래라는 흐름도 영향을 준 게 아닌가 싶다. 여러모로 손석희는 그 시대가 호출하기 제격인 사람이었다.

jtbc가 경향신문의 ‘성완종 인터뷰 녹음파일’을 옳지 않은 방법으로 습득해 내보내는 것을 보고 우울했던 건 그것이 손석희의 방송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일은 매우 단순하다. jtbc는 한 보안 전문가가 경향신문 측으로부터 빼돌린 녹음파일을 받아 경향신문이 인터뷰 전문을 보도하기 7시간 전 방송에 내보냈다. 취재윤리? 어겼다. 남의 것을 훔치고 가로채면 안된다는 단순한 사실을 논하기 위해 언론학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다. 보도의 공익성, 다시 말해 jtbc의 7시간 전 육성 보도로 새롭게 얻게 되는 진실은? 아무리 봐도, 없다. 간혹 ‘정당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부당한 수단의 사용’류의 윤리적 딜레마 비슷하게 이번 일을 보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손석희가 보도의 명분으로 ‘사실과 진실’ ‘국민의 알 권리’ 등을 내세우며 짜놓은 프레임이다. 그러나 그렇게 보도해서 얻는 부가적 진실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누구도 설명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음성이 문자보다 더 생생하다’는 정도인데, 그 ‘생생함’을 통해 진실의 어떤 부분이 베일을 벗고 드러났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4월 16일자 jtbc 뉴스룸 방송캡쳐. (출처 : 경향DB)


더욱이 경향신문은 김기춘, 허태열, 홍준표, 이완구의 금품수수 의혹 등 주요 내용은 음성파일을 공개한 터였다. jtbc의 보도가 미친 영향은? 하나 있다. 그 시간대 jtbc 뉴스 시청률이 2배 가까이 올랐다고 한다.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웠지만 공익보다 사익을 위한 보도였다. 정작 jtbc가 ‘국민의 알 권리’라는 기준을 들이댈 곳이 있다면 jtbc가 보도하지 않으면 누구도 알 수 없는 진실 혹은 사실과 관련된 건이다. 이를테면 지난해 말 파문을 일으켰던 비선농단 의혹 사건 때 민정수석실로부터 회유를 받았다는 한모 경위와의 인터뷰 음성파일 같은 것이다. 상당히 중요한 내용이 담겨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그 음성파일을 왜 온전히 방송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손석희에 대한 대중의 지지와 환호는 그가 곧은 언론인으로 살아온 데 따른 응당한 결과물일 것이다. ‘기레기’라는 말에서 보듯 언론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시대에 손석희처럼 신뢰받는 언론인이 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영향력의 크기만큼 윤리적 책임도 무거워지는 법이다. 이번 잘못을 거울삼아 시민의 지지를 공적으로 선용하는 언론인으로 남기를 바란다.


정제혁 사회부 기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