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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의당 대표선거 후보로 나선 조성주 후보의 출마선언문이 SNS를 통해 화제가 됐다. 2세대 진보정치를 주창한 그의 선언문은 진보진영뿐 아니라 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 입장에서도 새길 부분이 많아 보인다.
조성주는 양당 정치 구도의 ‘한국 민주주의가 외면한 이들’을 대변하겠다고 선언한다. 쌀과 김치가 있으면 부탁한다는 쪽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젊은 작가, 수십 번의 취업실패에 절망하며 고시원에서 눈을 감아야 했던 청년이 그들이다. 현실이 암담한 젊은이는 이제 소수가 아니다. 청년 10명 중 1명은 백수이고, 대졸자 10명 중 4명은 비정규직으로 첫 직장을 구하고, 그 비정규직의 월급은 정규직의 절반 수준이다.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에 이어 인간관계, 내집마련, 꿈과 희망까지 포기한 ‘칠포세대’라는 말도 나온다. 갤럽이 지난 24일 공개한 세계 웰빙지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조사대상 145개국 중 117위로 최하위권이었다.
이 때문에 그는 말한다.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 같은 앞선 세대의 경험이 아니라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노동운동 밖의 노동에 대한 경험이라고. 1987년 민주화 이후 제도적 민주주의, 정치적 민주주의를 이뤘지만 그 영웅담의 시대는 지났다는 선언이다.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은 더 이상 진리의 상아탑이 아니라 취업 준비기관화 됐고, 일자리는 ‘한 줌의 정규직’과 ‘대부분의 비정규직’으로 나눠진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새정치연합도 최근 혁신에 나섰다. 혁신위는 당내 기득권 타파, 사회적 특권 내려놓기, 불평등 해소, 전국정당화, 공천제도 민주화 등 5대 혁신 분야도 제시한 상태다. “새정치연합은 도당(徒黨) 또는 무리들의 모임이라고 보는 게 맞다”는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의 기준에서 보자면, 이번 혁신 노력은 도당을 그나마 정당(政黨)답게 만드는 과정이다.
정당으로서 기본을 갖춰가는 것과 별개로 새정치연합이 유권자들의 사랑을 원한다면 조성주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당은 그 사회 구성원들의 말을 들어주고 그들을 대변해 줄 때 지지받을 수 있다. 졸업후에도 대출금 갚기 바쁘고, 대기업 정규직은커녕 비정규직 자리도 못 구한 사람들이 주변에 흔하다. 정치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은 일부 극빈층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다수다. 서민을 위한 정당이라면 이들을 대변하고, 이들의 복지를 챙겨야 한다.
새정치연합은 이제 1980년대 독재 타도에 앞장섰던 자랑스러운 정당의 기억을 잊어야 한다. ‘86세대’의 정당, 민주화 세력의 정당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신 제2의 민주화, 즉 경제적 민주화에 앞장서는 정당이 돼야 한다. 소외된 다수보다 승리한 소수가 우선이고, 상생보다는 경쟁이 먼저라는 세력과 싸워야 한다. 정권과 각을 세우며 반사이익을 얻으려 말고 소시민의 팍팍한 현실과 싸워서 개선해야 한다. 최근 새정치연합에서 유일하게 칭찬받는 조직이 을(乙)들의 권익을 위한 ‘을지로위원회’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25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6.25 한국전쟁 65주년 행사에 참석한 문재인 대표 (출처 : 경향DB)
새정치연합은 현재 부동의 제1야당이다. 내부적으로 집권은 못해도 2등 지위는 변함이 없을 것이란 사고도 팽배하다. 연일 공천 지분 싸움을 하는 것도 이런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권자들의 기대를 저버린다면 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유권자들이 새로운 대안 야당을 찾아나서거나, 아예 정치권에 대한 기대를 접는 것이다. 기업환경에 빗대자면 새정치연합은 고객인 유권자들에게 기대를 갖게 하고 다른 정당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는 핵심역량이 무엇인지 다시 찾고 키워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있다.
환경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면 대기업도 한순간에 무너지는 게 현실이다. 연일 파당을 지어 내부 투쟁만 하는 부실덩어리라면 언제 쓰러져도 이상할 게 없다.
박영환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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