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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발언 한 토막이었다. 어쩌다 ‘최순실의 폭주’가 가능한 사회가 됐는가를 고민하던 터였다. 채 전 총장은 며칠 전 김어준의 팟캐스트에 나와 3년 전 국정원 댓글 수사를 하다 내쳐진 과정을 토로했다. ‘왜 잘렸나’라고 묻자 “법대로 하다가”라고 대답했다. 검찰이 권력 말을 왜 잘 듣느냐는 물음에는 “말 잘 들으면 승진시키고 말 안 들으면 물먹이고. 검찰총장까지 탈탈 털어 몰아내고. 뭐 그러면서 엎드리게 되고. 결과적으로 검사들이 평범한 직장인으로 돌아갔기 때문 아닌가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성과 당부가 가슴에 닿는 술회다.

조직이 샐러리맨화하면서 사회 전체가 초식동물화하고 있다는 얘기는 검찰뿐 아니라 관계, 정계, 언론계에서 늘 농담처럼 듣는 얘기다. 채 전 총장의 말처럼 이미 체제순응형 사회가 된 것인가. 난세에 모난 정일 필요없고, 험한 세상 가늘고 길게가 미덕으로 얘기된 지 오래다. 하물며 위기가 상시화하고 생존이 정의라는 시대 아닌가.

[김용민의 그림마당]2016년 11월4일 (출처: 경향신문DB)

검찰이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게 군림한다는 것은 시민들에게 이미 익숙한 표현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검찰의 잣대는 오로지 권력 편이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문제제기는 사표로 이어졌다. 정치인들은 또 어떤가. 집권여당, 특히 친박에게 시민은 안중에 없었고 주군만 존재했다는 것은 야당 진영만의 얘기가 아니다. 옳고 그름보다는 충성이 우선이었다. 그 충성도 맹목적이었다. 관료들은 어떤가. “너무 늦으면 저희가 난리납니다. (저는) 중간에서 확실하게 전달해드렸습니다.” 관료 출신 청와대 경제수석이 3년 전 CJ그룹 오너의 퇴진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나왔다는 전화 내용이다. 그가 과연 엘리트 공무원 출신 맞나.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과 기금 갹출과정에서 주연급 조연으로 활약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는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대학교수에서 대권 캠프를 기웃거리다 박근혜 진영에 안착한 인물이다. 주류라고 뻐기는 언론은 또 어떤가.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나 공공성은커녕 대통령의 발언을 충실히 받아쓰기에 급급했다. 이들에게 중립성이 훼손되면 국가가 위험해진다는 말은 애초부터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는 표현일 수 있다.

이쯤 되면 관위(官威·조그만 힘도 휘두르며 존재감 과시), 불위(不爲·부패도 저지르지 않지만 일도 하지 않음), 홀유(忽悠·교묘한 말로 포장하기), 간객(看客·강 건너 불구경 하기) 등 중국 사회를 상징하는 복지부동 표현들은 한국 사회에 그대로 옮겨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한국 사회의 민도가 고작 이 수준인가. 윗선의 부당한 압력에 버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가. 하다못해 소극적인 태업이라도 할 배포는 없어진 것인가.

보도를 종합하면 최순실은 사실상 ‘비밀 사설 정부’ 역할을 했다. 최순실의 ‘폭주’는 ‘박근혜 대통령의 전능함’에서 비롯된다. 이를 감안하면 최순실의 폭주가 아니라 박근혜의 폭주라 해야 마땅하다. 검찰총장을 간단히 제압하고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내는 의원을 겨냥해 시민에게 배신을 응징해달라고 요구하는 뻔뻔함을 감안하면 공포를 정치에 이용할 줄 아는 ‘전제군주’임이 틀림없다. 따지고보면 ‘부역’이란 용어가 새삼 주목받는 것 자체가 5년 단임 대통령 시대가 아닌 전체주의 시절이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주변에 돌격 앞으로를 마다않는 이들이 가득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체제순응형 초식사회를 흔드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초식사회를 깨운 것은 역설적으로 최순실과 대통령이다.

이미 언론은 두 재단의 실력자로 최순실이라는 이름을 찾아냈고, 최순실의 독일 내 유령회사도 밝혀냈다. 최순실의 태블릿PC에 담겨 있는 국정농단 내용도 내보냈다. 경쟁하면서 새 사실을 찾아내고 진실을 파헤쳐가고 있다. 1970년대 금권정치가 활개치며 썩어 문드러져 가던 일본이 그나마 버틴 것은 언론의 합리적인 문제제기와 이를 받아들여 성역없이 수사한 검찰 때문이다. 다나카 가쿠에이 당시 총리를 낙마시킨 것은 100만엔짜리 잉어가 떼지어 놀던 정원이 딸린 별장을 사들인 점에 의구심을 가진 탐색보도에서 시작했다. 록히드 스캔들의 배후에 도사린 다나카 전 총리의 그림자를 간파하고 이를 파헤친 것도 언론과 검찰이었다.

진부한 얘기지만 ‘물은 괴면 썩는다’. 더 진부한 얘기지만 ‘관행화한 방식은 부정해야 산다’. 이런 진부함이 여전히 회자되는 것은 진리이기 때문이다. 언론에 이어 시민항쟁이 시작됐다. 채 전 총장은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검사들이 쥔 칼자루는 법을 우습게 알고 제멋대로 날뛰는 놈들을 죽이라고 국민이 빌려준 것이다.” 그들의 순서이자 신뢰를 회복할 마지막 기회다.

박용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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