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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금요일 오전, 서울 구로구 천왕동에 위치한 서울남부교도소에선 특별한 수업이 진행된다. 서울대가 2013년부터 매년 두 번씩 10번에 걸쳐 40여명의 수용자들을 위한 인문학 교육을 해왔다. 이 과정을 진행하면서 가장 많이 변화된 사람은 나다.

내가 사는 경기도 가평에서 이곳에 가려면 3시간 정도 걸린다. 나는 갈 때마다, 천상의 예루살렘에 가는 순례자처럼 마음이 설렌다. 수용자들은 10주간의 수업을 이수한 후, 선정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수료식에서 발표한다. 이번 학기엔 19세기 미국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의 에세이 <자립>을 읽었다.

몇 주 전 거행한 수료식에서 독후감 발표가 있었다. 한 특별한 분은 139쪽 분량의 독후감을 제출했다. 수인복(囚人服)을 입은 40여명이 앉아 있고, 대표로 발표한 사람은 앞에 나와서 덤덤하게 말했다.

“어느 날 새벽, 교도소 창살에 걸린 샛별을 보았습니다. 이전에 본 적이 없는, 그 별을 두 눈으로 처음 확인했습니다.” 그러곤 말을 잇지 못해 우리 모두 숙연해졌다. 그가 이제야 그 별을 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 별은 누구나 아무 때나 어느 장소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별이 아니다. 자신이라는 심연으로 감히 내려가 덤덤하게 자신을 관조할 때, 슬그머니 얼굴을 내미는 마음의 천사다. 자신을 거룩한 공간에 가둘 때, 자신 스스로 그런 공간을 마련해 수인(囚人)이 될 때, 자기 자신이라는 별을 발견할 수 있다.


밤같은 冬至아침 동짓날인 22일 서울지방에 짙은구름이 끼어상오8시가 넘어서도 어둠이 깔려있었다._꼉향DB


며칠 전 동지(冬至)가 지나갔다.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짧아진 날을 동지라 부른다. 태양은 하늘에 낮게 내려와 일출과 일몰 간격이 9시간 정도로 줄어든다. 이날만 지나면 밤이 짧아지고 낮은 길어질 것이다. 20만년 전에 등장한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에게 동지는 추위와 배고픔을 동반한 죽음 그 자체였다. 밤이 영원히 지속되고 태양은 다시 떠오르지 않고 어딘가에 멈춰 있는 것 같았다. 동지를 영어로 ‘솔스티스(solstice)’라고 부르는데, 그 의미는 ‘태양(sol)이 서 있는 상태(stice)’다. 인류는 이날을 특별한 날로 정하고 정교한 의례를 행했다. 어둠, 추위, 그리고 죽음을 상징하는 동지가 물러나면, 빛, 따스함, 그리고 생명이 약동하기 때문이다.

동지는 절망과 희망이 현묘하게 섞인 죽음과 삶을 가르는 문지방이다. 호모사피엔스들은 이날을 무사히 넘기기 위해 정교한 의례를 행했다. 그 의례가 ‘빛의 축제’다.

‘빛의 축제’는 특히 고대 페르시아와 로마에서 꽃을 피웠다. 고대 페르시아에는 ‘미트라 종교’라는 것이 있었다. 온전한 삶을 산 사람들의 영혼은 마지막에 ‘친바트’라는 다리를 건너가야 한다. 이 다리는 진실한 삶을 산 사람들에겐 점점 넓어져 찬란한 파라다이스로 이어지지만, 눈치와 체면으로 인생을 연명한 사람들에겐 점점 좁아져 어두운 지옥으로 떨어지게 만든다. 이 다리 위에는 세 명의 재판관이 있다.

‘라슈누’, ‘스라오샤’, 그리고 ‘미트라’다. ‘라슈누’는 보통 ‘정의’라고 해석되지만, 본래 의미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숙고를 통해 알고 거침없이 가는 지름길’이다. ‘스라오샤’도 ‘복종’이라고 흔히 번역되지만, ‘운명적인 삶을 깨닫고 자발적으로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는 행위’다. 마지막으로 ‘미트라’는 ‘계약’이다. ‘미트라’의 깊은 의미는 ‘자신의 모든 것을 구속할 정도로 절대적인 원칙’이다.

우리는 동지에 바로 이 ‘친바트’ 다리를 건너야 한다. 어둠과 추위가 영원할 것 같은 심연의 순간에 미트라 신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일 년 동안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깨달아 알고 그 운명적인 삶을 자발적으로 살아왔습니까? 당신은 당신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 만한 자기만의 삶의 문법을 가지고 있습니까?”

고대 페르시아 종교에서 ‘빛의 신’인 아후라 마즈다를 섬기는 사제를 ‘마기(Magi)’라고 불렀다. 이들은 천체의 관찰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미래를 예측하기도 했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날이 바로 12월22일 동짓날이다.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복음서 중 <마태복음>에서 ‘마기’들이 등장한다. ‘마기’를 한국어로는 ‘동방박사’로 번역했다. <마태복음>의 저자는 예수의 탄생을 감지한 유일한 사람들이 유대인이 아니라 페르시아의 사제인 마기라고 말한다. 당시 유대인들도 메시아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그 메시아를 자신들의 관습대로 예루살렘의 명문 집안에서 태어난다고 믿었다. 전설에 의하면 예수는 예상과는 달리 베들레헴이라는 조그만 동네의 누추한 마구간에서 태어났다. 메시아는 우리가 예상하는 장소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그 메시아를 알아보는 자도, 유대인들이 아니라, 전혀 상관이 없는 ‘낯선 자’인 페르시아 사제 마기다. 동방박사는 하늘의 별을 관찰하는 사람들이다.

서울남부교도소의 한 수인처럼 하늘에서 항상 발견되길 바라는 샛별을 확인한 사람이다. 그 별은 밤이 가장 깊은 밤, 자신이 거주하는 장소 안에서 심오하게 몰입할 때, 슬그머니 그 모습을 드러내는 마음의 별이다.

우리는 그 수인과 동방박사처럼 동짓날 새벽별을 볼 수 있을까? 우리 스스로를 거룩한 경계 안에 가둘 자신이 있는가? 아니면 발 앞에 떨어진 먹잇감을 찾아 헤매거나 주위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고개를 들어 별을 본 적이 없는가? 우리가 우리에게 유일하고 독창적인 공간에 스스로 수인이 되어 과거의 자신을 살해하고 새로운 자신으로 태어난다면, 하늘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가장 숭고한 별을 우리에게 선물하지 않을까?


배철현 |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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