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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른 아침에 호숫가로 산책을 시작했다. 쌀쌀한 날씨지만 불편함을 감수할 만한 즐거운 발걸음이다. 아침햇살에 반짝이며 잔잔하게 요동치는 물결이 조용히 나를 부른다. 이 호수는 끊임없이 움직이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정지된 듯 보이는 웅장한 천상의 거울이다. 마치 진귀한 남청색 비단처럼 광활하게 펼쳐진 호수가 하늘을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이 된다. 나는 가끔 그 거울 위에서 유영하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이 호수는 언젠가부터 내 안에 숨어있던 영적인 보물을 발굴하여 조금씩 보여준다. 전통적인 철학이나 종교의 말들에선 찾을 수 없는,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한다. 내 마음속에 숨겨진 이런 신의 선물이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일상이 강요하는 산만함과 진부함으로부터 나를 매일 아침 구원한다.

이 호수는 항상 내 곁에 있었는데, 내게 영감의 원천이 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그 호수를 ‘그저’ 보았기 때문이다. 어떤 대상이 한 사람에겐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지만 다른 사람에겐 아무것도 아니다. 피카소 아버지는 아들의 천재성을 발견하고 한 가지 연습을 의도적으로 시켰다. 비둘기 다리를 하루 종일 그리라는 주문이었다. 그 후 피카소는 비둘기 다리만 거의 일 년 동안 그리는 지겨운 시간을 보냈다. 이 인내의 시간이 피카소를 변화시켰다. 그는 이제 비둘기 다리를 수십 가지로 다르게 그릴 수 있게 되었다. 보고 또 보는 것이 위대한 예술가들의 특징이다. 그런 관찰의 훈련을 통해 비둘기 다리가 위대한 예술로 승화한 것이다. 반복과 인내는 천재의 어머니다.

이러한 관찰의 훈련을 ‘관조(觀照)’라 부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관조’를 인간 삶의 최선이라고 말한다. 그리스어로 ‘쎄오리아’라고 부르는데 ‘이론’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theory는 이 단어에서 파생했다. ‘이론’이란 한 대상을 반복적으로 인내하며 볼 때 슬그머니 자신의 속 모습을 드러내는 그 어떤 것이다. 그리스문명과 서양문명의 기반은 비극경연이나 올림픽경기다. 여기에는 목적이 다른 세 부류 사람들이 있었다. 선수들이나 배우들은 자신의 영광과 명예를 위해 참여하고, 경기와 연극을 주관하고 사람들은 경제적 이윤을 위해 준비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부류는 ‘관객(觀客)’이다. 그는 자발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경기나 연극을 자유롭게 ‘관조’한다. 그는 기꺼이 이를 위해 돈을 지불하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집중하여 몰입한다.

관객이 관조하는 순간에 신기한 일을 경험한다. 자기 스스로가 경기에 참여한 운동선수와 배우가 된다. 관객만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에 선 배우도 몰입한다. 배우는 관객과 자신의 몰입을 돕기 위해 얼굴을 한 물건으로 가린다. 이 물건을 ‘가면’이라고 부른다. 가면을 라틴어로 ‘페르소나’라고 부르며 인간이란 영어단어 person이 이 단어에서 파생했다. 배우는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몸짓과 목소리만으로 극중 인물을 표현한다. 배우가 무아 상태에 진입하면 기적이 일어난다. 관객들도 한순간에 극중 배우가 되어, 배우의 희로애락을 동시에 느낀다. 결국 관객들은 무대 위에서 비극적인 상황에서 헤매고 있는 자기 자신들을 관조하고 있다.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자신이 맡은 배역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자신을 바라본다. 나 자신을 제3의 눈으로 가만히 보는 행위가 관조다.

우리에게 남겨진 최초의 비극은 기원전 472년에 첫 상연된 <페르시아인들>이다. 비극작가 아이스퀼로스는 신화적인 내용이 아닌 역사적인 사건을 다루었다. 기원전 480년 아테네를 중심으로 뭉쳐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기적적으로 페르시아 제국을 살라미스 해협에서 격퇴하였다. 당시 페르시아 제국은 이집트부터 인디아까지 23개 나라를 점령한 인류 최초의 세계제국이었다.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재정적으로 후원한 인물을 ‘코레고스’라 불렀다. 코레고스는 무대장치 비용과 배우들의 월급 등 연극제작과 공연에 필요한 모든 것을 후원하는 사람이다. <페르시아인들>의 코레고스는 페리클레스다. 23살 페리클레스는 깊이 묵상했다. 아테네는 그리스의 조그만 도시가 아니라 그리스 문명과 더 나아가 세계문명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는 것을.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인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가 경쟁했던 디오니소스 극장._경향DB


페리클레스와 아이스퀼로스는 그리스의 찬란한 문명은 아테네 시민 한 명 한 명의 자주적이면서 자발적인 관조 수련을 통해 도달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기원전 472년 봄 아테네 시민들이 원형극장에 모여들었다.

이들은 대부분 살라미스 전쟁의 참전용사들이었다. 이들은 살라미스 전쟁 때 사용하던 투구를 쓰고 방패를 들고 비장하게 앉았다. 연극이 시작하기 전에 감동적인 행렬이 있었다. 전사자들의 유족들이 죽은 자들의 투구와 방패를 들고 극장으로 들어와 관람석 맨 앞에 자리 잡았다.

관객들은 연극을 통해 자신들의 위대함을 확인하고 승리를 만끽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리스 최초의 비극인 <페르시아인들>에는 그리스인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전쟁에서 진 페르시아 제국의 크세르크세스 왕, 그의 어머니 아토사, 그리고 유령으로 등장하는 그의 아버지 다리우스뿐이다. 아토사는 크세르크세스에게 페르시아 멸망의 이유를 ‘자만심’이라고 말한다. ‘자만심’은 자신을 깊이 되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경험과 생각이 옳다고 착각하여 행동하는 성급함이다. 자신을 깊이 보는 관조적인 삶을 살지 못하여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한 크세르크세스는 절규하며 울부짖는다.

아테네 관객들은 크세르크세스가 자신의 일가친척을 죽인 원수이지만, 무대에선 크세르크세스를 보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심지어 원수의 마음까지 헤아리게 되었다. 앞에서 조용히 앉아 연극을 관람하던 페리클레스는 조용히 자신에게 속삭인다. ‘이것이 그리스다.’ 관조를 집단적으로 경험하는 것을 엔터테인먼트라고 한다. 그는 감동적이며 지적인 활동을 통해 아테네를 야만에서 문명으로 변화시켜 찬란한 서양문명의 어머니로 만들었다. 당신은 원수를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는가?


배철현 |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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