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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 지면을 빌려 쓴 ‘사회주택, 개미지옥에 맞서는 바보 같은 노력’이라는 글이 엉뚱하게 읽혀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가까운 지인은 개미지옥이나 바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쓸 필요가 있냐는 핀잔을 놓았다. 의도와 다른 반응이 있을 때마다 글쓰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일각에서는 불편하겠지만, 현재의 주택시장에 대해 개미지옥이라는 비판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그런데 ‘바보 같은’이라는 제목만 보였는지, 사회주택을 비판하는 글이라고 정반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어서 당혹스러웠다.

제목을 달면서 처음에는 사회주택 분야의 어려움을 직설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처절한’이라고 쓰는 것을 고민했다. 그런데 어렵지만 보람을 느끼기도 하고, 그곳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즐겁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많은 사람이 있기에, 지나치게 암울한 이미지는 적절치 않다고 느껴졌다. 그러다 비영리 사회주택이 순진하다고 비웃음을 사는 게 떠올랐다. 이윤을 좇지 않기 때문이다.

“능력 없는 사업자들은 판 흐리지 말고 제발 떠났으면 좋겠다.” 사회주택 관련 민간주체들이 모여 얘기를 나누던 간담회에서 나온 말이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저렴한 주택을 공급하려고, 주택시장의 모순과 부조리를 없애고 토지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려고, 어렵게 버티는 비영리 주체가 졸지에 판을 흐리며 민폐를 끼치는 능력 없는 사람이 되었다. 손해를 보며 사회주택 정책에 바보처럼 협조하는 것이 공공으로부터 유리한 조건의 지원을 받아오는 데에 걸림돌이라는 이유였다. 심정은 이해되지만, 사회주택의 취지에는 맞지 않는 발언이다.

사회주택 지원조례의 초안을 만들 때 어떻게 하면 사회주택의 취지가 훼손되지 않고 유지될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했다. 그래서 비영리법인, 공익법인, 사회적협동조합, 사회적기업을 사회주택 공급주체로 규정하여 서울시에 제안하였다. 모두 비영리를 목적으로 하거나 사회적 이익을 강조하는 회사 형태이다.

주택에서 발생하는 이윤, 즉 불로소득은 입주자들이 낸 임대료이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 주택시장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의 주축은 상위계층이 가져가는 하위계층의 임대료다. 불로소득의 또 다른 축인 시세차익이 줄어들기라도 하면 임대료가 크게 치솟는다. 이런 부조리한 구조를 끊기 위해서는 임대주택에 끼어있는 불로소득을 걷어내야 한다. 사회주택을 도입하면서 비영리성을 강조한 이유였다.

하지만 사회적협동조합의 인가과정이 복잡해 많은 사업자가 참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어쩌면 양적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이유로 일반협동조합이 포함되도록 수정된 조례가 제정되었다. 일반협동조합은 조합원에 대한 배당을 할 수 있으므로 영리 추구가 가능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주택에서 발생하는 이익은 입주자들이 부담하는 임대료에서 나온다. 영리를 추구하면 임대료가 오르거나 주택의 품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영리에 기반한 사회주택 공급은 모순이고 허상일 뿐이다. 오히려 비영리성이 사회주택의 시장경쟁력을 담보하는 토대이다. 즉 사회주택 활성화의 관건은 민간이 투자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공익적이고 비영리적인 주택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여 그에 맞는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조례가 개정되어 중소기업까지 지원대상에 포함되었다. 사회주택의 비영리성이 점점 옅어지는 것 같아서 착잡했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에게는 ‘바보 같은 노력’으로 비치는 비영리 추구가 사회주택이 어렵게 추구하고 있는 본질이며,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력한 대안이라는 점을, 우리 사회의 발전과 혁신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차근차근 되짚어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최근 사회주택에 관심을 두는 지자체가 점차 늘어나고 있고, 몇몇 곳에서는 사회주택 지원조례의 제정을 고려하고 있다고도 한다. 부디 사회주택의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강세진 새로운사회를여는 연구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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