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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작가축제에 참여하는 7일 동안, 국내외 작가들과 광화문의 한 숙소에 머물며 대학로를 오갔다. 점심 식사 후에는 국내외 작가 2명이 짝을 지어 독자들 앞에서 대화를 했고, 저녁 에는 자신의 문학작품을 다른 예술 장르로 각색해 무대에 올렸다. 서울국제작가축제를 통해 다시 확인한 사실은 한 사람의 작가는 하나의 독립된 행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행성을 알아보기 전까지 작동하는 것은 각자의 나라에 대한 선입견과 정체성이다. 시인 T J 제마와 처음으로 인사하면서 그녀의 나라 보츠와나를 상상하고, 소설가 퉁 웨이거와 마주하면서는 익숙한 듯 새로운 대만을 떠올리는 것이다. 콜롬비아, 아프가니스탄, 북아일랜드 등지에서 온 14명의 외국 작가들은 다채로운 상상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중 부지불식중에 나를 사로잡곤 했던 작가들은 파리에서 온 알렉시스 베르노와 린다 마리아 바로스, 그리고 금희이다.

한국문학번역원 주최 '2016 서울국제작가축제'에 참여한 소설가 김숨과 금희가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작가들의 수다' 행사를 함께 하고 있다. 연합뉴스

베르노와 바로스는 파리에서 온 시인들이다. 이들의 국적이 프랑스인데, 지금 나는 이들이 프랑스에서 왔다고 하지 않고, 파리에서 왔다고 소개하고 있다. 베르노는 파리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계속 파리에서 살고 있는 순수 파리지앵이다. 바로스는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청소년기에 파리로 건너와 교육을 받았고, 현재 파리에 거주하고 있는 이민자 출신이다. 바로스는 현재 파리 시단(詩壇)의 주목을 한몸에 받고 있다. 그녀는 1981년생의 젊은 시인이지만, 이미 프랑스 최고의 시문학상인 아폴리네르 상을 받았고, 6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베르노는 앙리 미쇼와 앙토냉 아르토를 추종하는 시인이자 영문 번역자로 첫 시집을 출간한 상태이다.

내가 베르노와 바로스를 눈여겨보게 된 것은 이들이 문학예술을 추동시키는 원천인 야생성을 확인할 수 있는 흥미로운 접점이기 때문이었다. 베르노는 부드러운 음색과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참가 작가들에게 파리지앵의 진면목을 보여주었고, 바로스는 예민한 성정 속에 매우 성실한 태도가 묘하게 공존하는 매혹적인 모습을 선사했다. 나는 바로스를 통해, 어쩔 수 없이, 그녀와 동향인 루마니아 출신의 에밀 시오랑과 미르시아 엘리아데, 외젠 이오네스코를 떠올렸다. 이들은 불가리아의 크리스테바, 아일랜드의 베케트, 러시아의 로맹 가리처럼 태생지를 떠나 파리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이방인들이다. 이들이 없었다면, 20세기 파리의 문학예술은 초라했을 것이다.

바로스를 보며 내가 되돌아본 것은 한국 문학의 현주소다. 이번 참가자 중, 중국을 대표한 소설가 금희는 옌볜 출신으로 축제 기간 내내 주로 한국어를 구사했다. 그녀의 존재는 그동안 내가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한국 문학의 순혈성, 아니 배타성을 환기시켜 주었다. 축제가 끝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국 문학에서도 이제 바로스와 금희와 같은 강력한 이방인들을 만날 수 있을까. 기대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이다.

함정임 | 소설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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