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아버지는 없고, 어머니 33세 농업, 할아버지 62세 어업, 삼촌 32세 선원, 재산 정도 하, 건우의 행복하지 못할 가정 환경에 많은 걸 묻진 않았다. 건우네 집은 조마이섬 위쪽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이것은 50년 전에 발표된 김정한의 단편소설 <모래톱 이야기>의 일단이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는 K중학생 건우의 담임선생님이다. 소설 속에서 “낙동강 하류의 어떤 외진 모래톱”으로 묘사되면서 조마이섬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현재 낙동강 하구 을숙도를 가리킨다. 당시 현지인들은 “강 하구에 모래가 밀려 만들어진 조그만 섬”으로 조마이섬이라 불렀다.

조마이섬뿐만이 아니라 건우 할아버지를 부르는 ‘갈밭새 영감’도 이곳의 생태 지리적인 환경 요소를 담고 있다. 그는 갈밭에서 요란하게 우는 새 같은 존재, 조마이섬 사람들의 터를 위협하는 자본가에 맞서 절대 물러서지 않는 인물이다. 이 소설이 씌어지지 않았다면, 낙동강 하구의 독특한 모래 지형과 사람들의 마음에 새겨진 아름다운 삶의 언어를 어떻게 기억하고, 쓸 수 있겠는가.

부산으로 터를 옮겨온 이후, 일주일 중 대부분의 낮을 을숙도가 내려다보이는 승학산 기슭 창가에서 보낸다. 창 아래, 강변로 어름이 <모래톱 이야기>의 소년 건우가 나룻배를 타고 조마이섬에서 통학하던 갈대밭 나루터라는데, 지금은 아파트 단지로 숲을 이루고 있다. 어쩌다 문우가 찾아오면, 을숙도 가까이, 강변로를 따라 하구 끝까지 내처 달려가는데, 그 끝은 다대포, 몰운대이다. 모래 포구가 드넓기로, 몰려오는 구름 형상이 비상하기로, 맑은 날 낙조가 황홀하기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몰운대 한쪽, 숨은 듯 자리 잡은 단골 횟집 할매집 마당가에 앉아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하곤 하는데, 엊그제 주말에는 아미산 기슭 다대도서관으로 올라갔다. 몰운대와 다대포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내가 다대도서관에 간 것은 진해 출신 소설가 김탁환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는 최근 세월호 참사를 직접적으로 다룬 장편소설 <거짓말이다>를 출간했다. 지난 2년 반 동안 세월호 이야기는 시와 산문, 다큐멘터리로는 상당히 발표되었다. 그러나 소설은 이번 <거짓말이다>가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다대도서관은 전국의 수많은 도서관들 중에서도 전망 좋은 열람실로 손꼽힌다. 주말이었으나, 작가를 만나기 위해 초등학생부터 중고생 그리고 백발의 어르신들까지 강연장은 발디딜 틈이 없었다. 그 어떤 비극적 상황과 절망도 망각의 힘을 이길 수 없다. 망각과 대적하는 유일한 무기는 붓, 곧 진실을 끝까지 추구하는 소설 작품이다. 김정한의 <모래톱 이야기>가 자취 없이 사라진 조마이섬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금 이곳으로 끊임없이 실어나르듯, 세월호의 소설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낙동강 하구에, <거짓말이다>를 감싸고 있는 다짐이 메아리친다. “뜨겁게 읽고, 차갑게 분노하라.”

함정임 | 소설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