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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자리>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이런저런 지면에 발표한 글들을 산문집으로 출간하곤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같은 주제의 같은 제목이 다시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에세이나 칼럼뿐만이 아니라 소설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글쟁이들에게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소설의 주제에 천착한 브룩스와 워렌 같은 연구자들은, 아무리 훌륭한 작가라 해도 평생 쓸 수 있는 주제는 둘 또는 셋이 전부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에게 어른에 대한 화두를 새삼 일깨워준 것은 최근 조용하게 회자되고 있는 성우제의 <딸깍 열어주다>이다. 이 책은 독특한 제목에 우선 눈길이 가고, 그 다음 표지 우측 상단 별처럼 박혀 있는 인물 사진들에 눈길이 멈춘다. 작가가 청소년기부터 인연을 맺어온 스승, 도반들인데, 불문학자 김화영, 황현산, 소설가 김훈 등 몇 분은 나도 지근거리에서 뵈어온 어른들이다. 그래서인지 책을 펼치자마자, 마치 함께 걸으며, 또는 마주 앉아서 추억담을 나누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정겹고, 벅차다.

출처: 경향신문 DB


이국땅에서 새 삶을 개척하는 작가에게 아버지의 정으로 보듬어준 스승, 공부와 세상의 법칙과 가치를 일깨워준 스승, 인간에 대한 예의와 품위를 보여준 스승, 도전과 실천을 견인해준 스승, 성우제가 들려주는 ‘아홉 스승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가, 나도 작가처럼 마음에 품고 있는 스승들과 그들을 향해 쓴 글들이 떠올랐다. 이어 문단의 스승이자 대선배인 박완서, 김윤식 선생님을 생각하며 단편소설 <저녁 식사가 끝난 뒤> <동행>을 쓴 것, 대학 은사인 김치수 선생님을 생각하며 <프로방스 가는 길>을 쓴 것이 줄줄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내가 쓴 수많은 글들은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기리는 추모의 형식, 그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야기를 사랑하는 존재,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싶고, 듣고 싶은 호모 나랜스들이다. 리베카 솔닛이 <멀고도 가까운>에서 밝힌 대로, 이야기꾼의 재능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이야기의 힘은 쓰는 이든, 읽는 이든, 기본적으로 감정이입에서 나온다. 페르시아의 젊은 왕비 세헤라자데가 살인마 왕으로부터 천하루 동안 목숨을 연장해간 무기는 이야기다.         

누군들 마음에 품은 스승 한두 분, 가슴 찡한 이야기 한두 편 없으랴. 다만 잊고 지냈을 뿐. 인생은 마라토너의 여정과 같다. 나는 인생길에 누리는 행복의 조건으로 고비마다 함께한 친구, 스승, 또는 어른의 있고 없음을 환기하곤 한다. 성우제가 <딸깍 열어주다>에 초대한 아홉 스승 이야기는 서랍 깊숙한 곳에 차곡차곡 넣어두고 부치지 못한 편지들, 거기에 깃든 마음의 역사와 삶의 행로를 펼쳐보고 싶도록 부추기는 유쾌한 에너지로 충만하다. 긴긴 여름 끝자락, 폭풍우와 뙤약볕을 견뎌낸 붉은 열매 같은 책이다.


함정임 | 소설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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