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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만에 지진을 두 번 겪고 나니, 하루하루가 마지막 날 같다. 멀고 가까움 없이 닥쳐온 지진 공포와 핵 위협에 매일 밤 유서를 쓰는 심정으로 눈을 감는다. 아침에 일어나 해가 떠오르는 광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초목을 스치며 불어오는 바람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아무 일 없이 하루하루가 흘러가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순간순간 되새긴다. 태어나 겪어본 적 없는 공포와 위협이 삶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다보니, 정작 지금껏 동고동락하며 애면글면 끌어안고 있던 현실의 크고 작은 일들이 하찮아지고, 지나가지 않았음에도 지나가버린 것처럼 망연자실해진다. 체호프가 말했던가. 습관이란 일과 옷과 가구와 식구를 삼키고, 전쟁의 공포까지도 꿀꺽 삼켜버린다고. 예술만이 잃어버린 삶의 감각을 되찾게 해준다고. 예술은 무(無)에서 유(有)를 향한 처절한 작업. 폐허에 피어나는 꽃처럼, 예술은 어떤 형식으로든, 축제처럼, 계속되어야 한다.

경북 경주에서 지진이 발생한 12일 오후 부산 해운대에 있는 최고 80층짜리 고층 건물이 휘청거리면서 주민들이 불안에 떨며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연합뉴스

며칠 후면, 전쟁의 포화 속에 의사와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작가 모히브 제감을 만난다. 그는 26일부터 7일간 14개국 시인과 작가들이 ‘잊혀진, 잊히지 않는’이라는 주제로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벌이는 서울국제작가축제에 참가해 아프가니스탄의 삶에 대해 한국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체르노빌의 참사 속에 살아남은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그들의 역사를 채록한 다큐멘터리 소설 <체르노빌의 목소리>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로 지난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처럼, 그 역시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포화 속 사람들의 삶을 다큐멘터리를 비롯 다양한 글쓰기로 전한다.

한 명의 작가가 쓴 한 편의 소설 작품이 뉴스 미디어를 통해 피상적으로 각인된 그 나라의 피폐한 인상을 깨고 속 깊게 공명하는 경우가 있는데, 모히브 제감과 같은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미국 소설가 할레드 호세이니이다. 그의 소설 <연을 쫓는 아이들>을 읽어가다 보면, 폭격과 폭발로 점철된 무시무시한 그곳은 순박한 마음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창공에 힘껏 연을 날리는 소년들이 우정을 나누고 있었고, 초록의 아름다운 초목이 자라고 있었다는 것을 환기하게 된다. 호세이니나 제감이 글쓰기로 때로 처절하게, 또 때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게 우리 앞에 소환하는 진실은 아프가니스탄만의 것이 아니다. 이번 서울국제작가축제에 참가하는 중남미 작가 산티아고 감보아의 콜롬비아도, 릴리 멘도자의 파나마도 있다. 감보아는 슬픈 목소리로 그러나 신랄하게 ‘밤의 기도’를 들려주고, 릴리 멘도자는 역동적이고 역설적인 목소리로 “미래 따위는 없다, 지금의 연속이다”라고 외친다.

오늘 밤에는 또 어떤 땅울림이 우리를 덮칠 것인가. 무수히 많은 파괴와 균열 속에 ‘잊혀진’, 아니 ‘잊히지 않는’ 것들을 안고 우리를 찾아오는 모히브 제감의 목소리가 귓전에 메아리친다. “무엇을 잊었는가? 아무것도 잊혀진 건 없다. 이 순간 이 공간에서 아무것도 소홀히 했던 건 없다. 다만 인간다움, 그것 말고는.”

함정임 | 소설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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