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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세 번째이다. 보수 정부에서 위험이 핵심적인 사회현상으로 등장하는 것 말이다. 박정희, 노태우, 김영삼 정부 때에도 위험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지만 지금과는 양상이 달랐다. 노동현장에서 일어나던 수많은 사고는 회유 혹은 탄압의 대상이 되었고, 취약한 사회 인프라로 인한 일상의 위험은 숙명처럼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명박 정부 때의 광우병 사태와 4대강 사업, 박근혜 정부 때의 세월호 참사, 그리고 윤석열 정부 들어 일어난 이태원 참사는 이제 고질화해가는 보수 정부의 패턴처럼 느껴져서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

이명박 정부는 위험의 사회화와 그 반작용으로서의 위험의 정치화를 최초로 경험했다. 이익을 보는 집단은 분명한데 그에 따르는 위험은 불특정 다수에게로 분산시켜버릴 때, 국가가 국민을 지킬 의지가 없다고 판단한 국민들은 분노하게 되고, 그것은 위험의 폭발적 정치화로 이어진다. 세월이 지나고 나니 광우병 사태는 비과학적 음모론이었다는 주장이 다시 힘을 얻고 있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그보다는 좀 더 엄밀한 진단이 필요하다. 과학적 기준으로 보면 비합리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수치에 근거해서 보면 그 당시 한국은 광우병으로부터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중 하나였는데, 광우병에 대한 공포는 가장 취약한 국가인 영국보다도 훨씬 더 커져 있었기 때문이다. 배후세력의 음모라는 주장은 필요조건을 충족하지만 충분조건에는 한참 못 미친다.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가 그랬듯이 그 당시에도 집회를 조직화하는 세력, 즉 필요조건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러나 사회운동이란 아무리 열심히 조직하더라도 성공확률이 매우 낮다. 필요조건에 시민들의 폭발적 참여라는 충분조건을 더해준 것은 국민을 지킬 의지가 없다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내보냈던 이명박 정부였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위험하면 못 먹고 안 먹는 것인데, 수입업자들도 장사가 안 되면 안 들여올 것”이라는 대통령 본인의 발언이었다. 시장이 어련히 알아서 걸러줄 텐데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말라는 뜻으로 들렸고, 국민들은 분노했다. 오죽하면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한국 사태를 두고 “신자유주의 국가가 다가오는 위험사회에 맞서 국민을 보호할 능력과 의지가 있느냐의 문제”라는 훈수까지 둬야 했다.

박근혜 정부 때의 세월호 참사는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훨씬 더 큰 비극이었지만, 과정은 아주 단순했다. 낡은 배를 타고 다닐 수 있도록 과도한 규제완화가 이루어졌고, 그나마 지켜야 할 안전규정을 지키지 않았고, 그것을 감독해야 할 관료들이 사업자와 결탁해 이익공동체가 되었고, 머리를 올리느라 7시간 지나서야 나타난 대통령은 “구명조끼 입었다는데 그렇게 찾기 어렵습니까”라는 한가한 소리를 했다는 것이 그 내막이다. 복잡한 현상과 맞물린 광우병 사태에 비하면 단순하기 짝이 없는 사건의 전개이다. 그러나 국민을 지킬 의지가 없다는 점에서는 똑같다고 할 수밖에 없다.

지난 8월9일자 이 칼럼에서 나는 “지지율에 갇힌 채 좀 더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면 국민들은 삶이 위태롭게 되었다고 느낄 것이다. (중략) 닥쳐 있는 문제들은 하나같이 전쟁을 방불케 하는 국민 생존의 문제이다. 이명박 정부 때 보았듯이 보수 정부의 가장 큰 위험은 정부가 국민들의 삶을 지키는 데에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라고 쓴 적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마치 정부의 책임이 아니라고 해석될 수 있는 행정안전부 장관의 발언은 보수 정부의 가장 큰 위험의 뇌관을 건드릴 수 있어서 부적절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즉각적인 정쟁화 대신 애도와 적극 협조를 택한 더불어민주당은 오랜만에 좋은 선택을 했다. 두고봐야 알겠지만, 이태원 참사가 정치화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광우병과는 달리 위험의 경계선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예고한 여러 정책 중에는 사회적 위험을 증폭시킬 수 있는 것들이 다수 섞여 있다. 보수 정부의 개혁이 국민의 삶을 세심하게 지키면서 진행된다는 새로운 모델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정치적 위험이 곳곳에 도사릴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진짜 리스크는 낮은 지지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높아지는 사회적 위험을 관리하는 데 실패하는 것에 있다. 인파로 가득 찬 축제의 골목길에서 느닷없이 맞이한 억울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여러 정책의 변화가 가져올 혹시 모를 사회적 위험을 수없이 사전에 다듬어야 한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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