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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졌다는 조사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다. 휴가에서 돌아와 13일 만에 가진 출근길 문답에서 대통령이 내놓은 발언들이 원론에 그친 것을 보면 휴가 기간 동안 또렷한 답을 찾지는 못한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나치게 당황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쪽이었다. 대통령 지지율이 높다고 해서 꼭 좋기만 한 것도 아니고, 윤 대통령의 후보 시절 지지율은 역대 대통령의 그것보다 원래부터 좀 낮았었기에 그리 깜짝 놀랄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이 낮은 지지율의 협곡에서 어느 방향을 쳐다보고 있는지는 중요한 문제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높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당연히 아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지지율은 최고 80%를 찍었고 퇴임 시에도 40%였지만, 그렇다고 국민들이 행복했던가. 대선 결과는 적어도 절반 이상의 국민들이 행복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오히려 그는 임기 내내 강성 지지층 뒤에 숨어 있었다는 평가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콘크리트 지지층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일상화시킨 당사자이고, 그 덕분에 ‘선거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얻었으며, 그것을 등에 업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인들을 맘대로 찍어내기까지 했다. 그래서 국민들이 행복했던가. 높은 지지율은 때로는 그 지지를 받는 정치인으로 하여금 권력을 자의적으로 휘두르게 부추기거나, 때로는 그가 국익을 위한 선택을 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기도 한다. 그러니 지지율 높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윤 대통령은 이런 무조건적 지지가 없다. 비록 0.73% 차이일망정 그가 정권교체에 성공한 순간부터 그는 더 까다로운 검증대에 서게 됐다. 정권교체를 위해 그의 실수를 눈감아줄 보수층의 인센티브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지율 수치보다 중요한 것은 지지의 내용이다. 수치가 높건 낮건, 윤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지지의 내용을 얼마나 냉정하게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윤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력의 특징은 패치워크 권력, 즉 조각보 권력이다. 혼자서 장악하는 권력이 아니라 좋건 싫건 여기저기서 끌어모아 과반이 되는 권력이라는 말이다. 대선 이전으로 돌아가보자. 그에 대한 지지의 내용 중 가장 큰 것은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이었는데, 이것은 정권이 교체된 지금은 훨씬 덜 중요해졌다. 다음으로는 이전 선거 때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지역적 지지, 이제 다수는 아니지만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6070 안보 보수와 산업화 세대의 지지, 2030 남성들의 조건부 지지,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은 서민과 자영업자들의 실낱같은 희망을 건 지지, 이런 것들이 조각조각 누벼지고 덧대지면서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을 만들어냈다. 여기에 때때로 윤 후보가 믿음직한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일 때면 지지율은 40%대로 올라섰고, 그런 비전 없이 조각보만 남으면 30%대 초중반에 머물렀다. 그나마 그 조각보마저 찢어졌다고 보일 때 후보의 지지율은 20%대로 곤두박질쳤다.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해서 이런 사실들이 바뀌지 않는다. 좋건 싫건 그는 5년 동안 이 조각보를 잘 유지하고 넓혀나가야 할 숙명을 가지고 있다. 권력을 나누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정반대다. 조각보를 넓히는 것은 권력의 기반을 넓히는 것이기도 하다. 지역 기반도 없고 노무현 정신 같은 정치적 유산도 없는 윤 대통령으로서는 이것은 피할 길이 없는 선택이다. 누군가가 윤 대통령에게 국정을 장악할 수 있는 비책을 알려주겠다고 한다면 바로 그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런 비책은 없기 때문이다. 이질적인 집단들의 지지를 조각조각 덧대서 권력의 기반을 넓혀나가는 것은 계파 간 연합에서 연정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위대한 정치가들이 남긴 업적이기도 하다. 잘만 하면 한국 정치를 업그레이드할 기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지율에 갇힌 채 좀 더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면 국민들은 삶이 위태롭게 되었다고 느낄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낸시 펠로시 의장의 방한, 코앞에 들이닥친 칩4 동맹, 시진핑의 3연임을 앞두고 물러설 곳이 없는 중국의 경제적·군사적 시위, 세계적 인플레이션과 자이언트스텝, 영끌족의 몰락과 흔들리는 방역 등 닥쳐 있는 문제들은 하나같이 전쟁을 방불케 하는 국민 생존의 문제이다. 이명박 정부 때 보았듯이 보수 정부의 가장 큰 위험은 정부가 국민들의 삶을 지키는 데에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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