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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초반, 방송에서 잘리기가 부지기수였던 흙수저 아이돌 그룹인 방탄은 소수의 한국 소녀 팬과 아시아 지역 일부 소년 팬과 연결접속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한국과 아시아의 소녀 팬으로 이루어진 영토를 벗어나(탈영토화) 미국과 유럽 대륙의 수많은 팬과 연결접속, 차원과 복잡도가 다른 새로운 연결접속을 만들어냈다(재영토화). 방탄이 한국과 아시아에서 벗어나 미국과 유럽의 팬들과 연결접속한 것을 단순히 팬의 범위가 확대되었다는 의미로만 볼 수는 없다. 이질적인 전 세계 팬들과의 연결접속이 방탄의 성공의 의미를 새로운 차원으로 변화시켰다.”

들뢰즈 연구자인 이지영은 <BTS 예술혁명>(파레시아)에서 방탄소년단이 팬덤인 아미(ARMY)와의 연대와 실천을 통해 이루어내고 있는 놀라운 사회, 문화적 변화와 미학적 변화를 ‘방탄현상’이라 부릅니다. 이 변화에는 “기존의 위계질서와 권력관계를 침식하며 사회 전체를 뒤바꾸는 혁명의 함의까지 발견”되고 있으며, “2016~2017년의 촛불혁명이 우리나라에 국한된 정치 변화를 가져왔다면 방탄으로 인해 초래되고 있는 변화는 전 지구적인 규모의 포괄적이고 근원적인 변혁을 징후적으로 표현한다”고 주장합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방탄은 2017년 11월, ‘아메리칸 뮤직어워드(AMA)’ 시상식장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함성과 비명을 지르며 춤을 따라 추는 수많은 방청객들, 방탄 멤버들의 한국어 이름을 연호하고 한국어 가사를 떼창하는 미국의 20대 여성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 낯선 광경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이었습니다.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영미권에서까지 명실상부한 성공을 거둔 한국의 아이돌 그룹은 방탄이 처음이었습니다.

방탄은 해외 진출 이후 ‘BTS’라는 이름을 주로 내걸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방탄소년단의 기획사 측은 BTS가 ‘Beyond The Scene’의 약자이며, 이는 ‘10대와 20대를 향한 억압과 편견을 막는다’는 뜻을 유지하면서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꿈을 향해 끊임없이 성장하는 청춘’이란 의미를 더했다고 밝혔습니다.

아이돌의 노래 가사가 품고 있는 의미를 46개 키워드로 분석한 <아이돌을 인문하다>(SIDEWAY)의 저자 박지원은 “그들은 어른들의 훈계와 가르침을 ‘위선’과 ‘거짓말’이라고 단언하는 동시에, 그들에게 휘둘리고 있는 나약한 청소년들을 향해 ‘더 이상 꾸물거리지 말라’고 일침을 놓습니다. 기성세대와 체제에 대하여 반항의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런 시스템과 문화에 젖어 있는 10대들을 향해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마치 꾸짖듯 노래하는 것이 방탄소년단의 특징”이라고 말합니다.

이지영도 “현재의 세계가 바뀌어야 한다는 필요성, 그리고 그 변화가 더 큰 자유와 해방, 더 나은 세상을 향해야 한다는 데 대한 감응과 공명. 이것이야말로 방탄이 글로벌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근본적인 요인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방탄의 사회비판적인 메시지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팬들의 공감을 일으킨 것은 무엇보다도 신자유주의적인 경쟁 체제가 전 지구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는 현실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심화되는 경쟁, 일자리 부족, 정의롭지 못한 부의 분배, 그로 인한 삶의 불안과 우울은 결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방탄과 아미가 만들어낸 ‘폭발성의 비밀’이 노래 가사에만 있을까요? 이지영은 젊은 세대들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유튜브라는 세계 최대 영상 공유 사이트의 힘을 강조합니다.

“공유 플랫폼의 폭발적인 양적 성장은 많은 양의 콘텐츠가 축적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양적 변화는 질적 변화를 야기한다. 예술에 대한 대중의 태도가 바뀌면서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갖는 새로운 예술형식이 출현한다. 모바일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하는 절대다수의 대중을 고려할 때, 21세기 모바일 네트워크 사회가 새로운 예술에 요구하는 것은 ‘공유가치’라고 할 수 있다. 복제 기술이 등장하면서 예술의 가치가 ‘의식가치’에서 ‘전시가치’로 바뀌었듯이, 모바일 네트워크 기술이 전면화되면서 21세기 예술의 가치는 ‘전시가치’에서 ‘공유가치’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지영은 ‘방탄현상’이 “절대적이고 영원해 보이는 현실의 권위와 힘을 무력화시키는 출발점”의 하나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주장합니다. “현실의 권위와 힘이 무력화되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다른 삶,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다. 이 꿈은 백일몽이 아니라 세계사적 변혁이라는 객관적 사태 인식을 바탕으로 꾸는 꿈이다. 이것이 희망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삶, 다른 세상을 함께 꿈꾼다면 이 희망은 새로운 현실이 될 것이다.”

앞으로 제2, 제3의 ‘방탄현상’은 끊임없이 출현할 것입니다. 저는 그 꿈을 이어가려면 학교교육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학교 안에서 교과서, 객관식 시험문제, 상대평가 등을 퇴출시켜야 합니다. 아이들을 자본의 노예로 키우는 경쟁교육을 지양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아이들이 협력을 통해 과제를 함께 수행하면서 공유가치를 깨닫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스스로 표현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게 배려하면 창의적인 사고력이 저절로 키워질 것입니다.

방탄현상에서 보듯 지금의 젊은 세대는 이미 새로운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전문 검색으로 소설 쓰는 법을 배우고, 독자들의 댓글을 스승으로 삼아 꾸준히 글을 써온 새로운 유형의 작가가 젊은 세대의 환호를 받는 세상입니다. 바야흐로 우리 교육이 이제 혁명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사교육업자의 압박을 뚫고 백해무익한 객관식 대학입시부터 없애야 마땅합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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