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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표가 “안정되고 글로벌 금융위기도 가장 먼저 탈출해 번영을 이뤘던 시기”라고 강조한 MB(이명박) 시절에 출판시장의 트렌드는 ‘셀프 힐링’ 단 하나였습니다. 경제적 양극화(불평등)가 갈수록 심화되고,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우울증 환자가 속출했던 그 시기에 국민들은 오로지 스스로 위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급기야 2012년에는 ‘멘붕(멘탈 붕괴)’에 빠져들었지요. 이 시기에 소설은 팔리지 않았습니다. 반대세력을 양파 껍질 벗기듯 하나둘 제거해나가던 박근혜 정부 시절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물론 가끔은 소설이 팔린 적이 없지 않습니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을 수상한 한강의 소설이 크게 팔려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는 경천동지할 일들이 날마다 터지는 바람에 정말로 소설이 팔리지 않습니다. 문학 출판사들도 신간을 거의 내놓지 않아 베스트셀러에 새로 오르는 책들은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거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만 남기고 신경을 꺼버리거나, 불행을 피하는 연습을 하거나, 혼자 살아가는 법을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자기계발서들뿐입니다.

유일한 소설이 하나 있습니다. 주인공이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돼?”라고 외치는 &lt;82년생 김지영&gt;(조남주, 민음사)의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이 팔리기 시작한 것은 ‘강남역 10번 출구 살인사건’ 이후 페미니즘 논쟁이 거세게 벌어지기 시작한 직후입니다.

최근에 걸그룹 레드벨벳의 멤버 아이린이 팬미팅 자리에서 &lt;82년생 김지영&gt;을 읽었다고 밝히자 아이린이 페미니스트라서 싫다는 남자들이 아이린의 사진을 불태우고 인증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렇게 논란이 일자 책에 대한 관심이 폭증하는 바람에 오히려 소설은 한 온라인서점에서 창사 이래 하루에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되었다지요!

어떤 책을 읽었다는 것만으로 어찌 페미니스트로 단정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페미니스트가 아닌 게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하여튼 지금 우리 사회는 타인에 대한 이해나 배려를 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공격의 대상이 되는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얕잡아보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젊은이들에게 나설 수 있는 용기를 부르짖은 아들러의 사상을 담은 &lt;미움 받을 용기&gt;(기시미 이치로 외, 인플루엔셜) 이후에 &lt;죽음의 수용소에서&gt; 벗어나는 지혜를 담은 빅터 프랭클이 주목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죽음의 수용소’에 살면서 나 하나만 잘 빠져나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실존 인물의 실명 수기를 바탕으로 한 안재성 장편소설 &lt;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gt;(창비)를 읽으면서 저는 그런 생각을 굳혔습니다.

소설의 주인공 정찬우는 1950년 7월 초 인민군이 파죽지세로 남하하던 시기에 김일성의 직인이 찍힌 임명장 하나로 노동당 교육위원으로 발탁되어 남한 영남지방으로 파견됩니다. 22세에 불과했던 그는 김일성대학 역사학과를 갓 졸업하고 교사로 발령받은 직후였지만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죽음의 전장’에 뛰어들어야만 했습니다. 전장에서 생사의 고비를 수없이 넘긴 그는 낙동강 전선에서 북한군이 유엔 연합군에 궤멸되다시피 한 이후에 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산속에 갇혀 빨치산이 됩니다. 결국 그는 국군에 잡혀서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다음 전범재판을 통해 남한에서 10년의 세월을 복역합니다. 정찬우는 자신만 살아남기 위해 온갖 악행을 일삼던 극좌파들과 결탁한 우익 중에서도 극우파인 간수장의 음모로 지독한 고문을 받으면서 좌익 ‘사상교육과 조직훈련’을 시켰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그는 수시로 징벌방을 드나듭니다.

“이번엔 단독 수용이었다. 함석으로 된 뒷문 가장자리의 미어진 틈바구니에서 차가운 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치는데 담요 한장으로 견디기란 산중에서 노숙하는 것보다도 힘들었다. 산중에서는 옷이라도 두껍게 입거나 아니면 땅을 파서 모닥불을 피우고 그 위에 흙을 덮어 온돌에서처럼 잘 수도 있었다. 허름한 수인복과 얇은 담요로 추위를 견디는 일은 훨씬 고통스러웠다. (…) 정찬우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환멸에 빠지게 되었다.”

정찬우는 죽음을 떠올립니다. “태중에서 아무런 준비 없이 세상에 나왔다가 모진 풍파를 다 겪고 이슬처럼 스러지는 게 인생이라지만 정말로 이건 너무 허무한 인생 아닌가? 이렇게 살 바에야 죽는 게 낫지 않을까?” 하지만 죽음의 고비를 수없이 넘긴 그는 결국 귀향을 합니다. 그의 목숨을 살려준 것은, 그가 과거에 빨치산이 되어 쫓기면서도 김일성으로부터 받은 권총을 한방도 쏘지 않은 것과 처형될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아무런 정치적 고려 없이 여럿 구해준 일이었습니다. 그의 ‘온정’ 때문에 살아남은 이들은 나중에 그를 구하기 위해 헌신하곤 합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소가 엷은 얼음 위를 지나가듯 조심해서 살아야” 하는 세상입니다. 역시 “태중에서 아무런 준비 없이” 세상에 밀려나온 젊은이들은 정찬우처럼 “터질 것 같은 절망감과 반항심”으로 굳어져 있습니다. 수용소 같은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그건 소설 속에서 한 죄수가 무심코 내뱉은 이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불운한 시대에 태어나 고난을 겪는 우리가 서로 돕지 않으면 누가 돕겠습니까?”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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