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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멈추었다. 블로그에도 새 글을 쓰지 못했다. 뉴스 화면을 보다, 기사를 읽다, 라디오를 듣다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그러하듯) 괴로웠다. 그래서 내가 글을 써야 할 차례가 돌아오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난 그날 이후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그러하듯) 슬퍼하다, 분노하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나이 열일곱의 아이들과 마주했다. ‘요즘 아이들은’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말했던 그 아이들이다.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으며, 치마도 줄여 입고, 머리도 염색하며, 몰래 담배도 피고, 수업시간에는 엎드려 자고 있는 그 아이들. 어른들은 열일곱의 아이들에게 ‘우리 때는 안 그랬다’며 혀를 차고 훈계했다. 그런데, 위기의 순간 어른들이 버린 배를 너희는 지키고 있었다. 무책임한 어른들의 지시를 따랐다. 어디 그뿐인가. 친구를 위해 구명조끼를 벗어줬고, 어린이를 먼저 들어올렸고, 물이 차오르는 객실로 돌아갔으며, 부모님에게 사랑한다는 문자를 남겼다. 너희를 지키고 구해야 할 어른들이 우왕좌왕 아무런 대책 없이 시간만 허비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열일곱의 너희들은 그 자리를 지켰다.

문득 깨달았다. 좌파, 우파 혹은 진보, 보수가 문제가 아니었다. 열일곱의 너희는 그날 바다에 잠기고, 배를 떠난 어른들에게 버림받았지만, 사실 오래전부터 배제되어 있었다. 젊은이들 없이는 한줌의 미래도 기대할 수 없는데도, 어른들은 부를 독차지하고 열일곱의 너희에게 자원을 나눠주지 않았다. 단지 세월호 문제가 아니라 이미 이 나라에서 어른들은 너희를 그 자리에 있으라고 이야기했고, 너희는 그 자리에서 그 고통을 고스란히 견디고 있었다.

칼럼의 제목은 이종우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이 한경비즈니스 3월5일자에 게재한 <지상 최대의 경제 사기극, 세대전쟁>이란 책의 서평 제목에서 빌렸다. 그는 “한국의 상황은 암담하다. 무상급식, 반값 등록금 얘기만 나오면, ‘거지근성’이니 ‘좌파적 발상’이니 하면서 비난할 정도다. 기초연금을 빼고도 고령층은 한 해에 90만원의 복지 혜택을 받고 있다. 영·유아가 받는 혜택의 40배가 넘는 액수다. 그러면서 미래 세대의 요구는 세상 모르는 소리로 치부한다. 세계적으로 봐도 젊은 인력 자원은 석유보다 빨리 사라지고 있다. 스파르타가 망한 건 무력이 강한 소수에게 나라를 의지하면서 젊은 사람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젊은이를 괄시한 나라 치고 번영을 누린 곳은 없었다. 그게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했다.

'그곳에선 행복하길...' (출처 :경향DB)


나라의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는 그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전략이다. 이종우 센터장은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예를 들었다. 그는 세계 정치인 중에서 가장 많이 검찰을 들락거린 부도덕한 총리였다. 그럼에도 그를 이탈리아 역사상 최장수 총리가 될 수 있도록 한 힘은 재정이 바닥을 드러내건 말건 아낌없이 지급률을 올려준 노령연금 정책에 있다. 이탈리아가 한정된 자원을 노년층에게 몰아줄 때, 독일과 북유럽은 젊은이들에게 자원을 몰아주었다. 대학 등록금을 없애고, 창업을 적극 지원했다. 한정된 국가적 자원의 배분이 그 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 이탈리아와 북유럽이 지금 현재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가 잘 설명해 줄 것이다.

한국의 모습은 어떨까? 대선 이후 여전히 풀리지 않는 기초연금, 그리고 이제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대적으로 등장할 지역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은 열일곱의 젊은 세대가 아니라 기성세대에 맞춤한 정책이다. 그들이 표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열일곱의 아이들이 아르바이트를 한다. 대학에 다니는 많은 젊은이들은 대출로 학자금을 마련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 어렵게 대학을 졸업해도 고단은 가중될 뿐이다. 젊은이들의 창의가 우리의 미래인데도, 우리의 젊은 세대는 고단한 아르바이트에 하루하루 시들어간다. 젊은이들이 희망을 잃는 순간, 죽지 않기 위해 대한민국을 떠날 것이다. 이 시대가 경고한다. 상식이 있는 이들이라면 오늘 시대의 경고를 들어야 한다. ‘늙어가는 나라에 미래란 없다.’


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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